''바닥 드러낸 수입 야적장, 놀고있는 크레인, 팔려가는 기계설비''

지금 인천항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30~40척의 화물선들로 붐비던 인천항.

그래서 외항에서 온종일 대기해야만 했던 인천항.

그런 인천항의 과거모습은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실제로 인천항 8개 부두는 40% 이상씩 텅 비어있다.

수입야적장은 황량하기만 하다.

부두엔 일감이 없다.

놀고 있는 크레인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인천세관의 집계가 이를 말해준다.

목재수입의 경우 지난달 3만4천t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달의 15만7천t에 비해 78%나 줄었다.

양곡 12%, 철재 27%, 시멘트 1백%, 원목 51%, 화공품은 48%가 감소했다.

그래서 인천항은 요즘 아무때나 배를 댈 수 있다.

체선율 "0"%다.

부두하역 업체들은 일감이 없다.

5월까지 서너개 업체는 부도날 것이라는 얘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인천항 3부두를 운영하는 한진의 조병찬 전무는 "일감이 없어 부두시설의
50%를 놀리고 있다"며 한숨을 짓고 있다.

또 다른 하역업체 관계자는 우리사정도 다급하지만 남동 부평공단 등 인근
수출업체에 비상이 걸려 있다고 전한다.

수출용 수입 원자재가 바닥나면서 가동률이 최고 절반정도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IMF이후 환율상승으로 원재료값이 급등, 수출오더가 늘어도 공장을 못돌리기
때문이다.

고무 펄프 원면 원피등 수입원재료 의존도가 큰 업체일수록 타격이 더 큰
것은 물론이다.

예컨대 부평구 청천동 현대페인트는 환율폭등으로 외상수입(유전스)대금이
크게 늘어나자 아예 조업률을 60-70%선으로 낮췄다고 한다.

이건산업과 대성목재 등 주요 목재업체들도 너나 없이 생산라인을 줄이고
3교대 근무를 2교대로 바꾸고 있다.

인근 공단의 기계소리 대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신음"소리가
인천항에 메아리치고 있다고나 할까.

남동공단 업체들은 남아도는 기계를 처분하기 위해 고심중이다.

조양금속 이재희사장은 "불황한파로 사람을 줄이고 기계를 처분하는 모습은
너무도 흔한 광경이 됐다"고 전했다.

이같은 광경은 인천항에서도 뚜렷이 보인다.

월미산자락에 위치한 6부두의 광경이 그렇다.

최근 들어 중고기계 수출이 급증, 다른 부두보다는 활기에 차있다.

자동포장기, CNC밀링, 선반, 원목대차기같은 기계들이 즐비하다.

공장에서 한창 돌아갈때 풍기던 기름냄새가 여전히 배어있는 채다.

NEC, 다이진, 영철기계 등 외산 국산 할것없이 뒤섞여 있다.

개중에는 포장도 뜯지않은 새 기계도 있다.

부도를 내거나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이 고철값으로 외국에 파는 물건들이다.

인천항 부두관리를 맡고 있는 임영식씨는 "이들 산업기계는 항만에 오는
대로 중국과 동남아, 중동 등지로 실려간다"며 "국부가 빠져 나가는 느낌"
이라고 씁쓰레했다.

철재 원목 잡화류를 하역하던 3부두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입화물 대신 크레인과 불도저 포크레인 레미콘트럭 등이 자리잡고 있다.

공사장에 있어야할 이런 장비 20여대가 먼지더미속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사우디의 두바이와 담만으로 넘어가는 중고수출장비다.

화물선 아세안글로리호에서 일하는 김종진씨는 이들 중고수출장비마저
없으면 이부두는 할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항만관계자들은 인천항에서 무너지는 한국경제의 실상을 보는것 같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명수 인천세관장 말도 똑같다.

그는 "IMF체제이후 인천항에 수입화물이 35%이상 줄었다"며 "이같은 현상은
부산 군산 등 전국 모든 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 인천=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