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실명제의 도입은 먼저 사법부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몰고올
것이라는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되면 대법원이 그동안 판례로 인정해온 부동산명의
신탁제가 없어지게 돼 기존판례를 모두 폐기하는 난제를 떠안게 된다.

여기에다 명의신탁된 부동산의 소유권을 원래대로 옮겨놓기 위한
원소유주들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청구소송이 전국 법원에 쇄도, 사법부는
부동산실명제소송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또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명의신탁 관련소송의 처리도 신법마련때까지
중지되거나 최소한 재판이 보류되는등의 우여곡절이 예상돼 부동산실명제의
실시는 여러모로 사법부엔 일대 혁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명확한 부동산의 실소유주를 가리기 위해 부동산소유권에 대한 실사를
벌여야 하며 소유주와 등기상의 명의자, 부동산을 판 사람등 3자간의 대조
작업도 필요하게 돼 등기소를 관할하는 사법부가 일대 홍역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명의신탁제에 대해 법조계는 연두기자회견에서 드러난 김영삼대통령의
부동산실명제도입 발언만으로는 부동산실명제의 틀을 예단할 수 없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전면폐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명의신탁이란 재산의 실제 소유자(신탁자)가 각종 수익을 챙기면서도
등기부등엔 제3자(수탁자)명의로 해두는 것을 말한다.

이 명의신탁제도는 법률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아니고 법원의 판례로 인정
되고 있는 민법상의 법률관계이다.

대법원은 판례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명의신탁하거나 투기목적으로
명의신탁을 하는등의 목적이 없는 한 명의신탁을 인정해 왔다.

지난 90년 8월 개정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도 대법원의 이같은 판례를
존중, 명의신탁금지규정을 제7조에 두고 있다.

처벌규정으로도 3년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같은 금지규정과 처벌규정에도 불구, 수많은 부동산소유권자들은
이 명의신탁방법을 재산은닉이나 증여, 세금면탈의 방법으로 악용해 왔던게
사실이다.

명의신탁은 신탁자가 신탁이유등을 서면으로 신고하도록 돼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재산을 은닉해 조세관청과 신탁자간의 숨바꼭질도 비일지재
하다.

결국 명의신탁제는 "법을 이용한 탈법행위"를 인정해 주는 셈이어서
폐지론이 줄기차게 거론돼 왔다.

특히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판례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부동산실명제
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이번에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될 경우 일제가 1912년 종중을 약화시키기
위해 종중땅을 사단법인격인 종중명의 대신 종손이나 종중대표이름으로
등기할 수 있도록 한데서 유래된 명의신탁은 무려 83년만에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법조계는 그러나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할지 주목하고
있다.

우선 금융실명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실명전환기간을 둘지, 아니면 향후
나타나는 명의신탁만을 금지할지 여부에 따라 사법부의 대응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먼저 금융실명제때처럼 과거 모든 비실명부동산을 실명전환할 경우 임원
명의로 땅을 사둔 기업등의 소송러시가 예상돼 사법부의 재판이 마비될
것으로 보인다.

명의신탁해제는 일단 재판형식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양도소득세등 세금을 물지 않고 명의를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등기시에도 명의신탁여부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 실사를 벌이거나
부동산을 판 사람과 산 사람 그리고 명의자등 3인을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때문에 거래를 행정관청에서 인정하는 관인계약서의 도입을 적극 검토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또 명의신탁제를 전면 폐지하는 쪽보다는 예외규정을
두는등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명의신탁제를 전면 폐지할 경우 소유권관계가 복잡한 종중의 토지나
늘어나고 있는 해외이민자들등의 선의의 명의신탁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 고기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