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원계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 배터리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2020년 전후 LFP 배터리가 등장할 당시 한국 기업은 “LFP 배터리는 주행거리와 출력에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얕잡아봤다. 겨울이면 주행거리가 더 짧아지는 단점도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 개발 속도와 실력은 국내 기업의 예상을 넘어섰다. 주행거리가 400㎞를 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과 달리 ‘셀투팩’ 기술 등을 도입해 500㎞ 이상 달리는 LFP 배터리를 내놨다. 가격도 삼원계 배터리보다 20~40% 저렴하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중국산 배터리를 쓰지 않는 한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됐다”며 “한국 배터리 셀 회사와 중저가 배터리 개발에 나선 이유”라고 말했다.
◇ 저가 라인업 고민 해소
삼원계 배터리 핵심 재료인 니켈 비중을 50~80%로 낮춘 미드니켈은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셀 회사의 고민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는 제품으로 꼽힌다. 우선 가격은 니켈 비중이 80% 이상인 하이니켈 제품보다 10~20%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LFP 배터리보다 여전히 비싸지만 주행거리가 길다. SK온이 개발한 미드니켈의 에너지 밀도는 L당 650와트시(Wh) 수준이다. 주행거리가 500㎞ 이상이며 에너지 밀도가 700Wh인 하이니켈 제품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에너지 밀도는 배터리 주행거리와 무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배터리업계는 미드니켈의 주행거리가 하이니켈보다 10% 정도 짧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산 미드니켈 배터리 도입으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라인업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 전기차는 현재 주행거리가 긴 하이니켈 중심이다. 현대차 아이오닉과 기아 EV 시리즈 등에서 스탠다드, 롱레인지 제품을 팔고 있지만 두 배터리 모두 하이니켈 계열이다. 이르면 내년부터는 사실상 처음으로 주력 차종에도 중저가 배터리를 장착해 판매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현대차의 코나 전기차와 기아의 니로, 레이 등 소형 전기차엔 LFP 또는 삼원계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했지만 주력이 아닌 데다 판매량도 적었다.
스탠다드와 롱레인지 차종 모두 하이니켈 배터리를 쓰다 보니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과 아이오닉 9을 제외한 차종의 가격 차이는 200만~400만원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배터리를 단 차량은 미국에서 판매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내 소비자 인식도 좋지 않다”며 “한국산 미드니켈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 이르면 내년 신제품 도입
업계는 현대차그룹이 같은 전기차종에서도 미드니켈 배터리를 쓴 보급형과 하이니켈 롱레인지 배터리를 장착한 프리미엄 차량으로 구분해 생산·판매하는 ‘이원화 전략’을 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제품 가격 차이가 500만~1000만원 넘게 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LFP를 단 보급형과 롱레인지 모델을 판매하는 테슬라 모델Y는 가격 차이가 1000만원 정도다. 테슬라는 보급형에 중국 CATL에서 생산한 LFP 배터리를 장착한다. 주행거리는 400㎞ 내외로 짧은 편이다. 롱레인지 모델은 주행거리가 500~600㎞로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에 장착하는 중저가형 배터리는 가장 먼저 SK온에서 생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SK온 내부 테스트 등을 모두 마쳤고, 이르면 내년 출시하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라인업에 SK온 제품 도입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SK온은 작년 11월 144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한 뒤 중국 옌청 공장과 헝가리 이반차 3공장 설비를 바꿔 미드니켈 배터리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헝가리 공장은 유럽, 중국 공장은 아시아를 겨냥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2028년부터 납품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