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안성기 영정 든 정우성 눈물…"韓 영화의 정신, 철인 같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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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성기 영결식 엄수
정우성 영정, 이정재 훈장 들고
설경구·박철민 등 운구
정우성 영정, 이정재 훈장 들고
설경구·박철민 등 운구
9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 엄수된 고인의 영결식은 오전 7시 출관을 시작으로 장례 미사와 공식 영결식 순으로 진행되며 영화계 동료들과 유가족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은 묵념을 시작으로 신영균예술문화재단 김두호 상임이사의 약력 보고, 고 안성기의 추모 영상 상영, 공동 장례위원장 배창호 감독과 배우 정우성의 추도사, 유가족 대표 장남 안다빈 씨의 인사, 헌화 순으로 이어졌다.
정우성은 이날 영정을 들고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섰다. 이정재가 훈장을 들었고, 설경구·박철민·유지태·박해일·조우진·주지훈이 함께 운구를 맡았다.
정우성은 추도사에 앞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렵게 운을 뗀 그는 고인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언제인지 기억도 되살리기 어려운 어느 시점, 선배님께 처음 인사를 드렸을 때 건네주신 인사말이 아직도 또렷하다. '응, 우성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후배를 대하듯 친근한 음성과 온화한 미소로 제 이름을 불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무사'(2001)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중국에서 약 다섯 달간 함께 촬영하며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선배님은 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한국 스태프는 물론 현지 스태프들까지도 안성기의 미소로 다독이셨다. 그 온화함의 깊이는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우성은 고인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려는 겸손과 절제.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당연하게 여기고, 자신에 대한 높임은 경계하던 분이었다"고 했다.
이어 "1950년대 아역 배우로 시작해 한국 영화를 온 마음으로 품고, 그 정신을 살리고 이어주기 위해 애쓰셨다. 배우 안성기를 넘어 시대를 잇는 영화인 안성기로서 스스로 책임과 임무를 부여하신 분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참으로 엄격했던 분이었다. 그 엄격함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때로는 한없이 고독해 보이기도 했다"며 "하지만 선배님은 늘 의연했고, 그 모습은 제게 철인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모든 사람을 진실된 이해와 사랑으로 대하며 배우의 품위를 넘어 인간의 품격을 지켜낸 아름다운 얼굴 안성기"라며 "늘 무색무취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선배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선명한 색으로 빛났다"고 했다.
이어 "혹시 누군가 오늘 선배님께 '어떠셨냐'고 묻는다면 '응, 난 괜찮았어'라고 정갈한 미소로 답하실 것 같다"며 "언제까지나 존경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선배님"이라고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김기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1977)를 계기로 연기를 재개해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하얀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수십 편의 작품에서 활약하며 1980~199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에도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 '라디오스타', '부러진 화살'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꾸준히 남겼다.
대종상·청룡영화제 등에서 수차례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힘썼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해 회복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30일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했고 6일 만인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고인이 별세한 날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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