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반코'에서 피어난 금융의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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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칸서스자산운용 대표
금융(finance)의 본질은 무엇인가. 흔히 자금의 융통이라고 정의하지만 그 뒤에는 인간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치열한 생존의 철학이 숨어 있다. 영어로 이자(interest)는 ‘사이에 있다’는 뜻의 어원(interesse)을 지닌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놓인 이들을 ‘연결’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연결의 대가인 이자가 당연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거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회에서 시간은 신의 영역이었다. 인간이 감히 신의 소유인 시간을 매개로 이득을 취하면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금융의 싹은 이 견고한 금기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났다. 중세 유럽, 거대한 자본이 모이던 성당은 종교적 제약 때문에 직접 대부업을 할 수 없었다. 대신 대부업을 맡은 유대인들은 권력자의 박해로부터 자산을 지키기 위해 대부채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오늘날 자본시장의 근간인 유가증권의 효시다.
은행(bank) 역시 이탈리아 광장의 환전상들이 사용하던 탁자인 ‘반코(banko)’에서 유래했다. 당시 상인들은 주화 보관료를 내고 증서를 받았다. 예금의 시작이다. 여기서 금융의 가장 위대한 발견인 ‘신용창조’가 탄생한다. 환전상들은 예탁 자금 중 일부를 타인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타인의 자본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현대 은행업의 핵심 기제가 발견된 순간이다. 일시적인 자금 부족은 동료 환전상에게 빌려 해결했는데, 오늘날의 ‘콜(call) 시장’이 됐다.
하지만 이 마법은 철저히 ‘신뢰’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 예금 환급 요구를 거절당한 고객들은 ‘반코’를 부숴 버렸고, 여기서 파산(bankruptcy)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부서진 탁자는 사회적 신뢰와 연결망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오늘날 금융 감독이나 예금자보호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필연적인 진화다.
결국 금융의 본질은 ‘형태’나 ‘이름’에 있지 않다. 타인의 자금을 운용해 신용을 창조하는 금융업 특성상 ‘공적 책임’과 ‘신뢰의 생태계 유지’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금융은 불확실한 미래를 연결하는 용기이자 신뢰에서 비롯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금융업계의 과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숫자로 치환되는 수익률 너머에 있는 고객의 삶과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반코’ 위에서 시작된 연결의 미학이 탐욕으로 변질돼 탁자가 부서지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금융이 그 기원에서 보여준 ‘연결’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우리 자본시장은 보다 건강한 성장 기반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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