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익 시노펙스 대표는 5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6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던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고성능 액체 여과용으로 쓰이는 올테플론(AF) 필터를 개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시노펙스는 스마트폰용 연성회로기판(FPCB)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삼성전자 주요 협력사로 수익성이 안정적인 회사였는데 2007년 반도체 공정에 투입되는 화학물질의 입자를 걸러내는 필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18년여 만인 지난해 글로벌 기업들이 과점한 초고난도 필터 영역까지 국산화했다.
◇실패 후 필터 사업에 주력 시노펙스가 도전에 나선 것은 독보적 기술력 같은 이른바 ‘해자’ 없이는 제조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손 대표의 신념 때문이다. 시노펙스의 출발은 전통적인 전자부품 제조사였다.
2010년대 시노펙스는 부착형 터치스크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며 2012년 매출 5420억원을 찍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일체형 터치 기술이 상용화되자 불과 3년 만인 2015년 매출이 197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손 대표는 “몇 년도 안 돼 3000억원 하던 사업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며 “그래서 올인 한 게 FPCB이고, 어떻게 하면 제조 역량을 높일까 궁리한 끝에 찾은 것이 멤브레인 필터였다”고 말했다. 멤브레인 필터는 특정 성분만 통과시키고 다른 성분은 걸러내는 얇은 막을 뜻한다.
그는 “FPCB 제조 공정을 깊이 들여다보니 불량의 상당 부분이 미세 입자 관리에서 발생했다”며 “보이지 않는 영역을 제어하지 못하면 아무리 설비를 고도화해도 한계가 분명했다”고 말했다.
시노펙스는 2006년 산업용 필터 전문 기업인 신양피앤피를 합병하면서 사명을 유원텔레콤에서 시노펙스로 변경하며 현재 모습을 갖췄다. 2007년 반도체 연마 공정에 쓰이는 CMP 필터 국산화에 성공하며 인테그리스와 폴 등 미국 업체를 밀어내고 국내 1위 업체가 됐다. 손 대표는 “의미 있는 성과지만 글로벌 업체의 비주력 시장을 뚫은 정도였다”며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반도체 이어 혈액투석 필터 도전 이 회사가 다음으로 도전한 사업은 고순도 케미컬 필터다. 반도체 공정에선 불산, 황산 등 다양한 화합물이 사용된다. 이때 화합물에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바로 수율이 저하된다. 시노펙스는 2019년부터 수백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사용되는 고순도 케미컬 필터 개발에 들어갔다.
6년의 연구 끝에 지난해 황산, 불산 등 고순도 화학물질을 걸러주는 10나노급 올테플론(AF) 필터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기업에서 상용화 검증을 받고 있다. 손 대표는 “올해 상반기 테스트를 마치고 본격 생산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며 “5나노급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필터 기술로 고어텍스에 버금가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 고어가 만드는 고어텍스는 미세한 나노 단위 구멍을 통해 외부의 물과 바람은 막고, 내부 습기는 배출하는 첨단 소재다. 옷뿐 아니라 의료, 전자, 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다.
손 대표는 “한국이 100% 수입에 의존 중인 혈액투석 필터도 개발해 시장을 공략 중”이라며 “2030년까지 매출 1조원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