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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한 고용 계약, 법적으로 유효한 이유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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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년전 美법원 "구두 종신계약도 유효" 판결
    "무기한 계약, 사기방지법 예외에 해당할수도"
    계약 해석 본질, 형식과 실질 간 균형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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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한 고용 계약, 법적으로 유효한 이유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요즘 세상에서 '평생'직장'이란 말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대기업도 정리해고를 시행하고, 스타트업은 개업 후 몇 년 만에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구직 현장에선 "우린 장기적인 관계를 원한다", "정년 없는 회사다" 같은 말이 심심찮게 오간다. 만약 당신이 이 말을 믿고 안정된 직장을 떠나 새 직장을 옮겼다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 해고 당했다면, 그 말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일하세요"라는 말, 믿어도 될까?

    1987년 미국 워싱턴DC 순회항소법원은 'Hodge v. Evans Fin. Corp.' 사건에서 이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답변을 내놨다. 원고인 호지(Hodge)는 피고 회사인 에반스파이낸셜코퍼레이션(Evans Financial Corp.)으로부터 "남은 여생 동안 고용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은 뒤 기존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했다. 그런데 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잘렸고, 그는 회사가 계약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에반스파이낸셜코퍼레이션은 그 약속이 구두로만 이뤄진 데다 사기방지법(Statute of Frauds) 위반이어서 무효라고 주장했다. 1년 이상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장기 계약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됐어야 했다는 논리였다.

    호지를 평생 고용하겠다는 건 장기 계약이어서 사기방지법상 서면으로 된 기록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논리적으로 사람은 언제든 1년 내에 사망할 수 있다"면서 이 계약이 1년 안에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계약으로 봤다. 만약 호지가 계약 체결 후 몇 달 만에 사망했다면 계약은 그 즉시 종료될 것이므로, 법적으로 '1년 이내 이행 가능성이 있는 계약'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 계약은 사기방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구두로 체결됐더라도 무효가 아니라는게 법원이 내린 결론이었다(Hodge v. Evans Financial Corp., 823 F.2d 559 (D.C. Cir. 1987)).
    말로만 한 고용 계약, 법적으로 유효한 이유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약 350년 전 확립된 '사기방지법' 원칙이란?

    Hodge v. Evans Fin. Corp. 사건은 고용주의 구두 약속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사기방지법이라는 오래된 법 원칙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다. 1677년 영국에서 시작된 사기방지법은 '일정 종류의 계약은 구두가 아니라 서면으로 이뤄져야만 효력이 있다'고 본다. 이는 당시 구두로 이뤄진 거래에서 허위 주장과 거짓 증언이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서면 요건을 통해 분쟁을 예방하고 계약의 진정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미법 체계에서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1년 이내에 이행될 수 없는 계약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의 이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서면으로 기록을 남겨두라는 취지다. 그래서 2년짜리 고용 계약, 5년 장기 공급 계약 등은 반드시 문서로 작성해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종신고용'은 서면 있어야만 유효할까

    그렇다면 종신고용(lifetime employment), 즉 피고용인이 사망할 때까지 고용하겠다는 약속은 어떨까? 직관적으로는 1년 이상 지속될 계약으로 보이며, 서면이 없다면 무효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사기방지법상 계약에서 1년 이내에 '이행되지 않는다(not to be performed)'는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이행할 수 없는(not performable)'으로 해석되는데, 계약 기간이 무기한인 경우 사기방지법 적용 대상인지가 문제된다.

    계약 기간이 무기한이더라도 계약 내용상 1년 이내에 이행이 가능하다면, 실제로 1년 이내에 이행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는 무관하게 그 계약은 사기방지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종신 계약이 문제가 된 위 사건에서도 법원은 고용인이나 피고용인이 1년 이내에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1년 이내에 이행될 가능성이 있는 계약으로 보고, 사기방지법이 적용되지 않아 계약이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됐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말로만 한 고용 계약, 법적으로 유효한 이유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법원의 판단은

    종신 고용 계약은 언뜻 보기엔 1년 이상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계약 당사자인 고용인이나 피고용인은 언제든 사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법원은 종신 계약이라도 논리적으로는 1년 이내에 언제든 종료될 수 있고, 이는 다시 말해 1년 이내에 이행될 수 있는 계약이어서 사기방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결국 호지는 에반스파이낸셜코퍼레이션과 맺은 구두 계약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법원의 논리는 사기방지법이 계약의 '가능한 이행 기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한다. 실제로는 1년 넘게 지속될 것 같아 보여도, 이론적으로 1년 이내에 종료될 수 있다면 사기방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것이다. 계약의 이행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1년 이상 지속될 것 같아 보여도, 이론적으로 1년 이내에 끝날 수 있다면 서면이 없어도 유효하다는 얘기다. 다만 일정 계약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돼야만 효력이 인정된다는 영미계약법상 사기방지법의 원칙은 우리나라 민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법 체계에선 이런 형식 요건이 계약의 효력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유다.

    위 사건은 사기방지법의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 서면이라는 형식의 존재 여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약의 실질과 당사자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그 유효성을 판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기방지법은 구두 계약을 무조건 배제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불명확한 약속을 걸러내고 진정한 합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법원은 이 법리를 합리적으로 적용, 계약의 존재와 효력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형식뿐 아니라 실제 합의의 내용과 신뢰관계까지 고려했다. 이 같은 접근은 계약이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당사자의 의사와 실질적 합의에 따라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을 증명한다. 오늘날 이메일, 메시지, 화상 회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지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계약은 형식과 실질을 함께 고려해 합리적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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