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총리 "지금 복지 감당 안돼"
65세 정년 이후 근무에 稅혜택
'더 오래 일하는 사회' 만들기
독일 정부가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하는 근로자의 소득세를 일부 면제해주는 새로운 복지 실험에 나섰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연금 재정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자 고령층 은퇴를 자발적으로 늦추는 세제 혜택을 마련한 것이다. ‘더 오래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 지속가능성 논란이 제기되는 복지 체계를 수술하겠다는 구상이다.
◇330만원 소득세 면제
1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근로자에게 월 2000유로(약 330만원)까지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 법안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총선 공약 중 하나로 ‘활동 연금제’로 불린다. 숙련 인력이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도록 해 노동력 부족과 늘어나는 연금 지출을 동시에 해결하는 게 핵심 목표다. 메르츠 총리는 최근 집권 기독민주당(CDU) 전당대회에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복지국가는 우리 재정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복지 제도 수술을 예고했다. 이번 조치도 그 연장선이다. 독일 경제가 3년째 침체에 빠진 상황에 나온 대책이기도 하다. FT는 “이번주 독일 연방정부에서 이 제도를 승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독일은 인구구조 변화로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법안에서는 “젊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이미 여러 산업 분야에서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다”며 제도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 경제부에 따르면 2030년 독일 노동인구는 2010년 대비 630만 명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2035년까지 숙련 노동자는 700만 명 부족할 전망이다.
줄어든 노동인구는 연금 재정도 고갈시켜 독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 지출 비율은 11.6%다. EU 평균인 12.2%보다는 낮지만 연금 재정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은 1990년대 중반에 연금 수급자 한 명당 보험료 납입자가 네 명가량이었다. 2020년에는 이 비율이 세 명으로 줄었고 2035년에는 2.4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 수급자 1명을 근로자 2.4명이 부양한다는 의미다.
독일 정부는 인력 감소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이상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독일 경제는 2023년과 2024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역성장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세수 부족 우려도
일각에선 세제 혜택이 세수 손실로 이어져 독일 재정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소비세 면제 제도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8억9000만유로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금 면제 대상인 28만5000명 은퇴자의 세수 부족분에 해당한다. 독일경제연구소(IW)는 제도 시행으로 예상되는 연간 비용을 정부 추정치의 1.5배가량인 14억유로로 추산했다. 근로자 약 34만 명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 제도가 장기간 시행되면 고용 증가와 경제 성장으로 세수 손실이 상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연금 지출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은퇴 연령은 65세가량이다. 퇴직 연령이 늦어지면 연금 수급이 미뤄지고 연금 납부 기간도 늘어난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제도 수혜자가 증가할수록 그에 따른 노동 기여가 늘어나 2~3년 안에 세수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며 “고령층의 사회 공헌도를 인정해줘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복지 지출을 줄여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유럽 국가의 정책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스도 앞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해 효과를 봤다. 그리스는 정년 이후에 일하는 은퇴자에게 추가 소득에 10% 세금 감면을 적용하고 있다. 정년을 넘겨 일하는 근로자는 2023년 3만5000명에서 지난달 기준 25만 명으로 약 7.1배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