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속 첫 문장이다. 스스로 구축한 지하 공간에 갇힌 익명의 주인공의 자기 고백서다. 그는 자기혐오와 자의식 과잉을 오고 가면서 걸러내지 않은 나체의 말들을 토해낸다. ‘실존적 자아’를 응시케 하는 근대와 현대의 두 작가가 있다. 높은 절벽을 오르고 숲속으로 들어가 본다.
절벽에서 ‘나’의 좌절에게 고하다
김인지 <애(崖)>(1935), 캔버스에 유화물감, 90.5 x 72cm, 제주도립미술관 소장
“선생님, 다리 많이 아프세요?” 질문에 걱정이 묻어난다. 잔뜩. 왼쪽 종아리부터 발목까지 테이핑을 한 다리 때문이었다. 애써 웃어 보인다. “괜찮아요” 최근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걸음을 힘겹게 내디딘다. 국립현대미술관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을 보기 위해서다. 저려오는 다리를 이끌고 덕수궁으로 향하는 목적은 분명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와 좋아하는 시대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몸의 아픔보다 들뜬 마음을 따라갔다. 8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이었다.
‘애틋하다 애절하다.’ 덕수궁관 제1전시실로 들어가며 읊조린다. 단어에도 감정이 있다면 ‘고향’에 대해 이처럼 말하고 싶다. 잔잔한 마음은 곧 달뜬 기분으로 바뀌었다. 애호하는 작품들을 맞이했다. 김주경, 오지호, 이인성이 그려낸 근대의 장면들을 지났다. 파란 하늘과 붉음의 대지와 쏟아지는 빛이 어우러지며 우리의 계절이 숨 쉬고 있다. ‘역시 눈부시고 아름다워’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색’과 ‘향토색’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익숙한 그림들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벽을 좁게 세운 공간이 보인다. 그 안쪽을 엿보고 싶어 몸을 틀었다. 아찔해졌다.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을 막아선다. 김인지의 <애(崖)>와의 첫 만남이다. 맹렬하게 솟아있다. 30호 크기의 작품인데 그보다 몇 배의 위엄을 뿜어낸다. 어깨가 움츠러들 거 같다. 낭떠러지의 마디 마디가 살아있다. 섬밀하다. 낯설지 않다. 이 웅장한 절벽을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서일까? 하늘 끝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암벽에 부딪힌다. 거칠게 질감을 더하며.
“서귀포 절벽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기억을 간질이던 기시감과 미시감의 행방을 알아냈다. 제주도의 끝자락 한반도의 최남단, 서귀포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보았던 장면 알고 있는 곳이리라. 5년 전 서귀포 공립 미술관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전에도 제주시의 미술관에서 2년간 일했으나 달랐다. 눈을 들면 끝없이 높다란 창공을 마주한다. <애(崖)>의 절벽의 왼편을 채우고 있는 하늘처럼. 캔버스에서 발화하는 ‘파르스름’이 이전의 시절로 데려다 놓는다. 서귀포에서의 날들에 대해서다. 걸음에 바람이 실리면 마음까지 청아해졌다. ‘낭만적’이기만 했을까. 코로나 시기였고 수술을 했다. 서울과 제주를 힘겹게 오갔다. 수술 후 낫지 않는 상처에 힘겨웠다. 몸의 아픔에 더해 직장에 병가를 내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포효의 기가 느껴지는 崖를 보니 철렁한다. 당시의 기억이 헷갈리고 현재의 마음과 뒤엉킨다. 거대한 절벽의 기에 눌려 버렸다. 기가 죽는다.
김인지란 이름이 생소하다. 부끄럽지만 알지 못했다. 제주의 미술관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음을 고백하겠다. ‘제주도 최초의 서양화가’ 김인지를 소개하는 수식어다. 멋스럽고 의미 있는 타이틀이나 조금 부족하다. 그의 삶을 톺아보고자 할 때. 서귀포시 예례동에서 태어났다. 제주농업학교를 거쳐 전라남도 도립사범학교 강습과를 수료하고 교직에 몸담았다. 스스로 붓을 잡았다. 독학으로 미술을 익혔다. 서귀포의 너른 해변의 투명한 빛은 갈망하게 했으리라. 캔버스에 이 바다의 색을 그려내겠다고. 당그랗게 떠 있는 작은 섬들은 젊은 그에게 불을 붙였다. 화가가 되어 이 신비로운 풍경을 담아내겠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붓을 든 순간 이미 난 화가였다’ 동의하는 바다. 예술가는 이처럼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한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내면의 깊은 소리를 외면치 않는 그 기운을 닮고 싶다. 몸을 일으켜본다. 허리를 곧게 편다.
최초였다. 당시 관전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제주도 작가로서(당시 전라남도) 첫 입선이었다. 1935년, 당당하게 그 존재를 알렸다. 한반도의 가장 끝에는 섬이 있음을. “높다란 낭떠러지 밑에서 빨래하는 것이 畵(화)興(흥)을 자아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늘 공간의 量(양)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혹평이었다. 선전 심사위원이자 당대의 유명 서양화가였던 김종태가 썼다. 찌릿하게 저려온다. 현재 아픈 부위의 통증이 반응한다. 상처받았다. 내게 한 말이 아님에도. 절벽의 구획된 마디마다 짙은 명암이 도드라진다. 위용을 한껏 뽐내며. 평가에 반박하고 싶어졌다. 압도되어 움츠러들 만큼 치밀한 묘사라고. 화려했고 혹독했다. 김인지의 선전 데뷔다. 모든 ‘처음’이란 이렇게 위태롭다. 대응하기보다 버티어 낼 뿐이다.
<애(崖)>를 둘러싼 모진 말에 대신 맞서는 나를 발견했다. 알아챘다. 어떤 두려움은 대상에 대한 갈망임을. 마음의 소리를 인정하니 다른 장면들이 이제야 눈에 담긴다. 두 여인이 하얀 옷을 입고 빨래를 하고 있다. 손이 닿는 곳에 물이 흐른다. 표표하게. 한갓져 보인다. 평화로운 섬의 오후다. 좁아졌던 마음이 넓어진다. 그 넓이만큼.
눈을 든다. 낭떠러지는 여전히 위세를 뽐내는 중이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밀어내듯이. 가끔 ‘절망’이란 단어로만 살 때가 있다. 이내 자신을 더 몰아붙인다. 결국 ‘애(崖)’로 자신을 밀어낸다. 늘 의문이다. 왜 고난은 더디게 오지 않고 성큼 달려들까. 준비를 한다면 조금은 덜 아플 텐데.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노력이 부족해’ ‘내가 못나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애(崖)> 속 암갈색의 퇴적층이 두터워진다. 채색이 짙어진다. 나의 절망의 더께다. 높다란 주상절리의 절벽이 소리를 낸다. “너는 약하구나”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내게로. 나의 나약함을 실감한다. 스스로의 설정값을 해내지 못했던 장면들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눈물이 날 듯 눈동자가 흐려진다.
“선생님, 이 색감 너무 예뻐요. 하늘 좀 봐요” ‘뚝’하고 끊어졌다. 침잠하던 감정에서 벗어났다. 함께 온 동료 선생님의 한마디에. “역시 서귀포는 예전에도 아름다웠나 봐요” 내가 말했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스스로에게 놀란다. 방금 전까지 절벽의 틈에 갇혀있었는데. 그림 속 벼랑 옆에 하늘이 펼쳐졌다. 맑고 옅은 파랑이 눈에 담긴다. 떨구었던 고개를 든다. ‘파르스름’한 하늘이 마음속 청신한 바람을 일으킨다. 흰 구름이 내 속의 까만 감정을 밀어낸다. 조금씩. 면적을 넓히며. 숨이 쉬어진다. 다시.
시야가 넓어진다. 뭍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이 보인다. 절벽을 뒤로한 채. 아니. 아랑곳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이다. 하늘색을 품은 물빛이 반짝인다. 또 다른 메아리 소리가 들린다. “결과에 주저앉지 않으면 다시 빛날 수 있어” 자책이란 견고한 절벽의 틈을 뚫고 나오는. "'해녀'는 다시 가감(加減)을 허락하지 않을 만치 통합(統合)된 가작(佳作)” 평가가 바뀌었다. 3년 만이다. 김인지의 《선전》 세 번째 입선에서였다. 1938년 제주의 ‘해녀’를 그린 작품이었다. 중앙화단의 텃세를 딛고 자신의 길을 내었다. <애(崖)>를 향한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 위세의 대담함을 닮고 싶다. 김인지의 이토록 사실적인 풍경화의 기법처럼.
컬러풀한 숲속에서 실존주의를 질문하다.
박광수 <작은 산>(2025), 캔버스에 유화, 162.2 x 130.3cm, 박광수 제공
뜻한 바 없는 행동이었다. 연필을 들었다. 노트의 종이를 한 장 찢었다. 지그재그 선을 그었다. 위아래도 가로 세로로 반복했다. 대학원 페이퍼를 쓰던 몇 주 전 늦은 밤이었다. 진도는 더디고 기한은 임박했다. 답답함을 풀고 싶었나 보다. 그때였다. 하나의 그림이 스친다. 무수히 그어진 선들이 교차한다. ‘누구였더라’ 어렴풋하다. 기억에 집중해 본다. ‘박광수’였다. 종종 그의 작품을 만나곤 했다. 여러 선들이 부딪치며 진동한다. 개성이 강한 작가들이 참여한 단체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튀어나오진 않는다. 조용히 흔든다.
보고 싶어졌다. 마침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지난달 9월 초 점심시간 직장 옆 갤러리로 향했다. 학고재에서 ⟪흙으로부터⟫ 전시가 열리는 중이었다. ‘박광수’의 이름이 보인다. 본관에서 백색을 품은 조선시대 도자를 만났다. 오전 내 업무로 피로해진 마음이 청아해진다. 옅은 무채색의 그림들을 지나며 고요의 지평을 넓혔다. 신관 갤러리로 향했다. 박광수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타오르는 색채들이 맞이한다. 눈이 부시다. 정적은 깨졌다. 과시하는 듯했다. 몸 전체를 압도하는 듯한 대형 신작이다. 그 뒤로 숨듯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 보인다. 누군가가 주저앉아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어졌다. 뿜어낸다. 빛을 머금은 노란색을 품은 황금색이다. 선연하게 뿜어낸다. ‘화려하네’라고 중얼거리다 ‘어, 아닌가?’하고 고쳐 말한다.
숲이 펼쳐졌다. 풍경 속에 한 남자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고개를 떨군 채.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분절되듯이 끊어졌다. 내 속의 우울을 건드리려 한다. 기척을 알아채고 방어 태세를 취해본다. 가라앉고 싶지 않다. 걷잡을 수 없게 될까 봐. 다른 그림을 보러 가야지 하고 머리로 생각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이 소년을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 <작은 산>과의 마주침이다.
붙잡혀 버린 시선을 확장해본다. 우선 소년의 눈을 보고 싶었다. 응시하는 순간 후회했다. 공허하다. 감정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 슬픔도 아픔도 아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표현한다. ‘삶의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다고’ 과한 해석일까. 에어컨이 갑자기 세진 듯하다. 냉기가 훅 덮친다. 여전히 여름의 기운을 담은 더운 날이었음에도. 금빛으로 채워진 신체는 형체가 흐릿하다. 숲은 소년을 품고 있다. 같은 황금색으로. 보호색일까? 문득 의문이 든다. 소년은 숲속에 버려진 게 아닐까? 난란한 광채의 바깥쪽으로 눈을 돌린다. 잡초들이 뒤엉켰다. 어지럽다. 현란하게 발화하는 유채색이 뒤틀림을 부추긴다. 풀과 줄기들과 얽혀들면서. 어긋난 숲속의 풍경들이 내 안으로 침투한다. 어울리지 않고 마찰하며. 기기묘묘하다. 감정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다.
<작은 산>에 웅크리고 있는 소년은 흙을 그러모으는 것일까, 나뭇잎을 뜯어내고 있을까. 질문들이 충돌한다. 촘촘하게 채워진 선들이 침입해 온다. 그동안의 인생에서 좌절의 서사들이 조금씩 다가온다. 곧 부풀어 오른다. 기이하게 자라있는 소년의 손톱이 확장한다.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 손톱 밑의 멍이 저릴 듯하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공에 맞고 변형된 상처다. 분명 이제는 통증이 없음에도. 모순된 감각들이 부딪친다. 소년을 둘러싼 황금색이 점점 짙어진다. 그와 숲의 경계가 흐트러진다. 녹아들었을까, 숨어버렸을까. 어렵기만 하다.
“본인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감내해 내고 있다” 그림 속 주인공에 대한 박광수의 말이다. 최근 마주한 실패의 순간이 나를 덮친다. 무겁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벅차다. 소년의 축 처진 눈매와 탈진한 듯 지친 눈동자 속에 나를 비춘다. “네 탓이야”라고 말하는 나를 본다. <작은 산> 속의 소년과 내가 겹쳐진다. 이내 포개졌다. 함께 털썩 주저앉았다. 야속하다. 왜 굳이 실패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하는 걸까.
샤르트르의 「구토」 속 구절이 떠오른다. “부조리, 조약돌과의 관계, 마른 흙과의 관계, 나무와의 관계... 그 모든 관계에서 부조리한 것이다” 어린 시절 마주한 문장은 멋스러워 보였으나 속이 더부룩했다. 「구토」 속 로캉탱의 언어들에 대해서다. 유년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책을 집어 들었다. 입학식 날부터 가만히 앉아 어려운 제목의 책을 읽던 내가 신기했단다. 고개를 숙인 채. 친구는 지금도 놀리곤 한다. 고백하련다. 두려워서였다. 새 학기, 새 학년이 되면 기대보다 걱정 쪽에 부등호를 표시했다. 낯선 모든 것에서 숨고 싶었다. 옆 짝꿍을 마주 보고, 앞 사람에게 말을 걸 용기가 없었다. 그때마다 데미안, 구토, 이방인 등을 읽었다. 때때로 깊게 침잠하는 염세적인 성향에 대해 괜스레 책을 탓해본다. 자아의 틀이 형성되기도 전에 왜곡된 관계들이 난무하는 책들을 읽어서라고. 이를 ‘실존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박광수의 <작은 숲>은 이내 불러들였다. ‘인간은 세상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실존주의의 특징을. 캔버스 안의 선들이 분기한다. 숲속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밀어낸다.
은유에서 직설로. 박광수의 회화는 변화했다. 검은 선들이 빽빽한 흑백의 세계가 그의 시그니처였다. 어둠에 휩싸여 선과 선 사이를 헤집어 겨우 숨은 도상들을 찾아야 했다.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달라졌다. 이제 유화 물감을 품은 색채들이 유영한다. 형상을 드러내며. <작은 산>은 원래 흑백 회화였다. 2023년도에 작업이었다. 올해 유채색으로 재탄생했다. 원망스러웠다. 메마른 줄기들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화려한 색으로 드러나고 만 소년의 축 처진 어깨가. 마치 나의 실패를 마주하라는 신호 같기에. 2025년의 <작은 산>은 소년의 알 수 없던 표정도 읽어낼 수 있게 했다. 모든 걸 쏟아낸 자가 맞이한 좌절의 줄거리다. 박광수가 그려내는 컬러풀하고 냉혹한 유화다.
손톱을 깎던 어느 밤이었다. 나의 ‘작은 방’에 ‘틱’ ‘틱’ 소리만이 울린다. <작은 산> 속 손이 머리에 스친다. 정확하게는 괴이하게 늘어나 있는 손톱이. 그 동작이 연이어 떠오른다. 무언가를 열심히 그러모으고 있는. 그는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궤적을 그리는 중이다. 퍼뜩 떠올랐다. ‘인간은 자유롭게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실존주의의 본질이다. 다짐한다. 마음은 어찌할 수 없으니 행동을 선택할 뿐이라고. 소년의 옆에 다시 앉는다. 그와 함께 ‘좌절 속 작은 희망’을 긁어모으리라. 지난했던 올해 여름이 지나갔다. 바람이 불어온다. 계절은 흐른다.
미움에게 고하는 말
‘믿어지니?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 박상수의 「극야(極夜)」 속 첫 문장이다. 긴 추석 연휴의 끝날 서점에 갔다. 화사한 노란 표지에 손이 가 펼친 시집이었다. ‘아무도’에 나를 포함한다. 당신이 그런 하루를 보내기를. 나도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