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단원으로 살아온 김미연의 20여 년, 그 시간은 무대 위에서 흘러간 수많은 음표와 함께 쌓여왔다. 음악은 매번 무대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곧 사라진다. 그러나 그 덧없음 속에서도 남는 것은 있다. 바로 그 순간에 머물렀다는 증거 그리고 그 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흔적이다.

2024년 11월, 해외 투어를 앞두고 우리는 음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숙소 이동 없이 한 나라에 머무는 일정 덕에 여유가 있었고, 도요타 랜드 크루저에 연주자 몇 명이 함께 올라타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로 향했다. 사막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압도적이었다. 황금빛 모래의 물결은 시간마저 삼켜버리는 듯했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결은 마치 오래된 악보의 음표처럼 그 자리에 머물다 사라졌다. 그곳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호흡 속에 몸을 맡기는 경험이었다.
퍼커셔니스트 김미연. / 사진. ⓒ 구본숙
퍼커셔니스트 김미연. / 사진. ⓒ 구본숙
사막의 풍경은 음반의 주제와도 닮아 있었다. 공명은 단지 소리의 울림만을 뜻하지 않는다. 광막한 고요 속에서 바람에 지워지는 발자국조차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한순간 울리고 사라지지만 그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파동으로 이어진다.


아부다비의 사막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 속, 끝없는 모래 위를 걸어가는 뒷모습은 삶의 궤적과 겹쳐 보인다.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고 뚜렷한 이정표도 없었다. 발자국은 바람에 쉽게 지워지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막을 걷는 행위가 길을 만들듯 연주자로서의 매 순간은 음악을 형성해 왔다. 사막의 고요는 음악의 침묵과 닮아 있다. 그 속에서 그녀는 더욱 분명하게 울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음 하나를 내는 행위가 얼마나 본질적인 생의 표정인지 작은 리듬을 쌓아 올리는 일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갖는지 긴 여정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더욱 선명하게 깨닫는다.
사진작가 구본숙의 사진이 쓰인 퍼커셔니스트 김미연의 앨범 'Resonance'. / 필자 제공
사진작가 구본숙의 사진이 쓰인 퍼커셔니스트 김미연의 앨범 'Resonance'. / 필자 제공
마림바 연주자 김미연은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프랑스 파리 국립음악원과 벨기에 왕립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하며 국제무대의 문을 열었다. 2005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단원으로 활약해온 그녀는 파리 오케스트라 객원 연주, 아시아필하모닉, 평창대관령음악제 등 국내외 주요 무대에서 풍부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2007년 벨기에 유니버설 마림바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3관왕을 차지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았고, 이후 PASIC, IKMMA, 유니버설 마림바 페스티벌 등 굵직한 무대에 초청되었다. 브뤼헤 콘세르브허바우, 겐트 더 해피 바흐 페스티벌(The Happy Bach Festival)에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보이며 마림바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

첫 음반 《The Moment》에서는 스승이자 작곡가인 에릭 사뮈(Eric Sammut)와 같이 협업했다. 프랑스 출신인 사뮈는 현대 타악기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프랑스와 유럽을 중심으로 솔로와 앙상블 연주, 교육 활동을 통해 음악의 지평을 확장해 왔다. 그는 단순한 스승을 넘어 김미연의 음악적 사유와 표현을 함께 탐색하는 동반자로서 그녀의 해석과 손끝에서 마림바의 울림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제시했다. 사뮈의 작품은 섬세한 서정성과 정교한 리듬 구조가 어우러져 악기의 물성과 소리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유의 장을 만든다. 그는 다양한 마림바와 타악기 레퍼토리를 창작하며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공명을 탐색한다. 김미연과의 협업 속에서 사뮈는 작품을 그녀에게 맞춤화하며 소리의 순간적 울림이 삶과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퍼커셔니스트 김미연이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 사진. ⓒ 구본숙
퍼커셔니스트 김미연이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 사진. ⓒ 구본숙
이번 10월 즈음 발매되는 두 번째 음반에는 사뮈가 김미연을 위해 작곡한 협주곡 ‘Destiny’가 수록되어 두 음악가가 공유하는 예술적 언어와 깊은 공명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적인 해석과 다채로운 감성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는 김미연의 연주는 마림바라는 악기의 물성을 넘어 존재의 깊이를 탐색하는 울림으로 확장된다.

김미연에게 마림바는 단순한 타악기의 범주에 한정된 악기가 아니다. 나무의 물성을 소리로 번역하는 매체이자 공명을 통해 존재와 시간을 사유하는 도구다. 그녀의 서정성과 정교한 리듬 감각은 물리적 타격에서 비롯된 소리를 인간의 호흡과 감정으로 확장하며, 듣는 이가 악기의 물질성을 넘어선 사유의 차원으로 진입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사뮈와의 긴밀한 음악적 교감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서로의 울림을 증폭시키는 예술적 실험으로 완성된다.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은 발견의 연주자라는 점이다. 수많은 타악기를 거쳐온 경험은 김미연의 음악 안에서 마림바를 하나의 고정된 대상이 아닌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장으로 만든다. 그녀의 해석 속에서 마림바는 때로는 현악기의 서정성에 다가가고 때로는 타악기의 원초적 에너지로 분출한다. 이 양극의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연함은 곧 그녀의 음악적 정체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동시대 작곡가들과의 적극적인 교류 또한 김미연의 음악 세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축이다. 한국의 서주리, 프랑스의 에릭 사뮈, 일본계 미국인 앤디 아키호, 그리고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의 작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단순히 해석자로 머무르지 않고 작품을 통해 자기 고유의 음악적 화법을 세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적 완결성을 넘어 작품과 연주자, 청중 사이의 삼중적 공명을 창출한다.

따라서 김미연은 오늘날 마림바라는 악기가 지닌 잠재력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음악은 공명으로 시작해 공명으로 끝나며 그 울림은 단순한 소리의 잔향을 넘어 인간 존재와 시간, 기억을 사유하게 하는 예술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에릭 사뮈가 김미연을 위해 작곡한 협주곡 'Destiny'의 악보. / 사진. ⓒ 구본숙
에릭 사뮈가 김미연을 위해 작곡한 협주곡 'Destiny'의 악보. / 사진. ⓒ 구본숙
타악기는 언제나 시간의 예술 속에서 경계를 점유해 왔다. 음과 소음, 리듬과 침묵 사이를 오가며 그 불안정한 진동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타악기의 숙명이었다면 김미연의 행보는 그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발견과 변주를 이어온 탐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다양한 악기들 속에서 예기치 못한 매혹과 마주했고 그 매혹은 손끝에 스민 울림으로 체화되었다. 그러나 그 긴 여정 속에서도 마침내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마림바였다. 나무의 숨결로부터 발화하는 그 음색은 단순히 공명을 발생시키는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존재와 시간 사이에 닿는 일종의 공명적 사유의 장이었다.

음반의 제목 《Resonance》(공명)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한국 작곡가 서주리의 작품이 시간의 흐름을 다루며 마림바를 기억의 매개체로 세운다면, 에릭 사뮈의 곡은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의 불가피성을 울림의 결로 드러낸다. 앤디 아키호는 이 악기가 지닌 새로운 질감을 탐구하며 다중의 리듬과 색채를 통해 공명의 층위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마지막으로 이블린 글레니의 작품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아득한 반향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회상의 진동을 불러낸다.

음반은 이렇듯 단순한 레퍼토리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연주자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자 마림바라는 매체가 지닌 심층적 사유의 기록이다. 물리적 진동을 넘어 존재의 울림을 호출하는 음악 그 울림은 청중의 내면과 맞닿아 또 다른 공명을 발생시킨다. 결국 이 음반은 묻는다. “공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소리의 반향인가, 아니면 인간이 세계와 맺는 가장 근원적인 관계의 비유인가?” 김미연의 연주는 이 질문을 마림바라는 나무의 결 위에서 끊임없이 증폭시키며 음악을 하나의 철학적 실험으로, 존재론적 사유의 장으로 탈바꿈시킨다.
퍼커셔니스트 김미연. / 사진. ⓒ 구본숙
퍼커셔니스트 김미연. / 사진. ⓒ 구본숙
그리하여 이번 음반은 그녀가 걸어온 여정의 반향이자 지나온 시간에 대한 깊은 응시이다.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 속에서 시간과 운명, 기억, 그리고 삶의 미묘한 질감을 체험하며 결국 그녀의 존재는 음악과 함께 남긴 발자국으로 기록된다. 그 발자국이 다시 공명하여 청중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기를 바라는 소명, 그것이 이 이 음반이 담고 있는 근본적인 울림이다.

인생은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의 길과 같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종종 고독과 침묵을 마주하지만 동시에 음악은 물이 되고 쉼이 되며 빛이 되어 걸음을 이끈다.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진다 해도 소리로 남은 공명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또 다른 사유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음악과 삶, 발자국과 울림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존재와 시간이 서로를 비추며 끊임없이 공명할 것이다.

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