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레토>(1851), <라 트라비아타>(1853), <일 트로바토레>(1853), 이 세 오페라를 가리켜 베르디의 ‘황금 삼부작(Trilogia Popolare)’이라고 부른다. 각각 완전히 다른 배경과 캐릭터,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감정의 본질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서로 유기적 연결성이 있다. 특히 <일 트로바토레>는 베르디의 절정기에 작곡한 대표작 중 하나로 사랑⸱복수⸱질투⸱운명의 아이러니 등 극도로 감정적인 이야기를 특유의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음악 언어로 표출한다. 노래만으로 따지면 각 성부(소프라노⸱테너⸱바리톤⸱메조소프라노)가 모두 주인공급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악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한 장면 (201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왼쪽부터] 루나 백작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 레오노라 역의 안나 네트렙코, 만리코 역의 프란치스코 멜리 / 사진. ©Christian Michelides, 출처. Wikimedia Commons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한 장면 (201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왼쪽부터] 루나 백작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 레오노라 역의 안나 네트렙코, 만리코 역의 프란치스코 멜리 / 사진. ©Christian Michelides, 출처. Wikimedia Commons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는 무엇인가? 음유시인(吟遊詩人), 즉 중세 때의 기사(騎士)이자 시인을 일컫는다. 자칫 문약(文弱)하다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사랑과 영웅담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문무(文武)를 겸비한 이다. 노래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시인이자 무사(武士), 멋지지 않나? 만리코(Manrico)가 여기선 주인공이다. 아라곤 왕궁의 귀족 시녀 레오노라(Leonora)를 사랑하고 있다. 사실 만리코는 왕족의 피였으나 집시여인 아추체나(Azucena)의 양아들로 키워졌다. 아라곤의 귀족 루나(Luna) 백작은 반란군의 수장인 만리코를 처단해야 하는 운명. 더구나 그도 레오노라를 동시에 사랑하고 있으며 둘은 형제간으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모든 걸 아추체나가 기획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옛날 아주 오래전 아라곤 왕국의 왕이자 루나 백작의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그(만리코)는 너(루나)의 동생이었다!...복수를 이뤘어요, 어머니!"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쟁쟁하다.

<일 트로바토레>는 오페라 역사상 ‘비극 중의 비극’으로 불린다. 2막에서 레오노라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소유욕, 그리고 만리코에 대한 질투와 복수심이 엉켜 격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루나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가 있다.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Il Balen del suo Sorriso)'.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가 부르는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2011)]

그녀의 반짝이는 미소는 별빛조차 빛을 잃게 하네 / 그 곱고 순결한 얼굴은 언제나 황홀함으로 나를 감싸지 /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더는 견딜 수 없구나 / 내 피는 마치 흡혈귀처럼 그녀를 향해 흐르고 있다네 / 그녀는 나의 삶 그 자체! / 만약 그녀의 눈길이 다른 사람을 향한다면…나는 죽고 말리라!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Dmitri Hvorostovsky, 1962~2017)의 영상과 녹음은 늘 최고로 평가된다. 시베리아 땅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신으로 잘생긴 얼굴, 늠름한 아우라, 그리고 특유의 은발을 휘날리며 성가(聲價)를 높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2015년 뇌종양에 걸려 2년간 투병 끝에 55세라는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나 클래식 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따뜻하고 관능적인 중저음 음색의 소유자로, 특히 고음에서의 길고 매끄러운 레가토(legato, 부드럽고 끊김 없이 이어 부르는 성악 스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무대에서의 존재감도 정평이 나 있었는데 185cm의 키에 탄탄하고 균형 잡힌 운동선수형 체형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외모가 주는 강력한 존재감에도 노래를 함에 있어서는 감정 표현을 과장하지 않고, 정제된 스타일로 감동을 주는 해석을 견지했다. 표나지 않게 카리스마를 풍기는 모습의 흐보로스톱스키의 별명은 ‘시베리아의 흰 늑대’. 빛나는 은색 머리칼과 중후하고 귀족적인 외모에 부합했다.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 사진. ©Kremlin.ru, 출처. Wikimedia Commons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 사진. ©Kremlin.ru, 출처. Wikimedia Commons
웨일스 출신의 걸출한 바리톤 브린 터펠(Bryn Terfel, 1965~ )과의 라이벌 서사도 유명하다. 1989년 영국 웨일스 주도(州都) 카디프에서 열린 성악 콩쿠르에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았던 브린 터펠을 물리치고 최종우승을 거머쥔 이가 바로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다. 2등이 브린 터펠. 그도 물론 깊고 풍부한 성량에 리릭 바리톤에서 베이스바리톤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며 커리어를 키워왔으나, 흐보로스톱스키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평가다. 물론 고향 웨일스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