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레토>(1851), <라 트라비아타>(1853), <일 트로바토레>(1853), 이 세 오페라를 가리켜 베르디의 ‘황금 삼부작(Trilogia Popolare)’이라고 부른다. 각각 완전히 다른 배경과 캐릭터,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감정의 본질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서로 유기적 연결성이 있다. 특히 <일 트로바토레>는 베르디의 절정기에 작곡한 대표작 중 하나로 사랑⸱복수⸱질투⸱운명의 아이러니 등 극도로 감정적인 이야기를 특유의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음악 언어로 표출한다. 노래만으로 따지면 각 성부(소프라노⸱테너⸱바리톤⸱메조소프라노)가 모두 주인공급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악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는 오페라 역사상 ‘비극 중의 비극’으로 불린다. 2막에서 레오노라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소유욕, 그리고 만리코에 대한 질투와 복수심이 엉켜 격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루나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가 있다.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Il Balen del suo Sorriso)'.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가 부르는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2011)]
그녀의 반짝이는 미소는 별빛조차 빛을 잃게 하네 / 그 곱고 순결한 얼굴은 언제나 황홀함으로 나를 감싸지 /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더는 견딜 수 없구나 / 내 피는 마치 흡혈귀처럼 그녀를 향해 흐르고 있다네 / 그녀는 나의 삶 그 자체! / 만약 그녀의 눈길이 다른 사람을 향한다면…나는 죽고 말리라!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Dmitri Hvorostovsky, 1962~2017)의 영상과 녹음은 늘 최고로 평가된다. 시베리아 땅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신으로 잘생긴 얼굴, 늠름한 아우라, 그리고 특유의 은발을 휘날리며 성가(聲價)를 높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2015년 뇌종양에 걸려 2년간 투병 끝에 55세라는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나 클래식 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따뜻하고 관능적인 중저음 음색의 소유자로, 특히 고음에서의 길고 매끄러운 레가토(legato, 부드럽고 끊김 없이 이어 부르는 성악 스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무대에서의 존재감도 정평이 나 있었는데 185cm의 키에 탄탄하고 균형 잡힌 운동선수형 체형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외모가 주는 강력한 존재감에도 노래를 함에 있어서는 감정 표현을 과장하지 않고, 정제된 스타일로 감동을 주는 해석을 견지했다. 표나지 않게 카리스마를 풍기는 모습의 흐보로스톱스키의 별명은 ‘시베리아의 흰 늑대’. 빛나는 은색 머리칼과 중후하고 귀족적인 외모에 부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