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중심에 새로 지을 복합문화공간 설계를 발표하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설계를 본 사람은 입을 모아 비난을 쏟아냈다. “왜 이렇게 끔찍한 건물을 짓느냐”, “파리 중심부를 망치려고 작정했느냐” 같은 반응이었다. 이 건물은 문을 열고 나서도 혹평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정유 공장 같다거나 파리의 괴물 같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그 건물은 바로 퐁피두센터(Pompidou Centre)이다. 1977년에 문을 연 퐁피두 센터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현대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뒤샹의 <샘>부터 피카소와 칸딘스키 그리고 마티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퐁피두 센터 벽면 색 구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보부르 거리 동측 파사드를 처음으로 완전하게 담아낸 사진) / 사진. © Sergio Grazia
퐁피두 센터 벽면 색 구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보부르 거리 동측 파사드를 처음으로 완전하게 담아낸 사진) / 사진. © Sergio Grazia
퐁피두센터 외관 / 사진. © 김선경
퐁피두센터 외관 / 사진. © 김선경
퐁피두센터는 1971년에 프랑스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가 주도한 건축 프로젝트였다. 퐁피두는 현대미술 애호가였다. 그는 파리 중심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퐁피두센터라는 이름을 들으면 미술관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센터에는 파리 최초의 공공도서관과 음향&음악 연구소도 함께 있다. 퐁피두센터를 처음 찾았을 때 내 눈길을 끈 것은 외벽을 따라 길게 움직이는 빨간색 에스컬레이터였다. 강렬한 색감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처음에는 에스컬레이터의 빨간색이 단순한 장식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빨간색은 퐁피두 건물에서 사람의 동선을 표시하는 색이었다. 수도 배관은 초록색이었고 전기 배선은 노란색이었다. 냉난방 배관은 파란색으로 구분했다. 마치 설계도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파리 사람들은 이 빨간색 에스컬레이터를 ‘애벌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창을 통해 파리 시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급한 성격 탓에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늘 걷는 편이지만 퐁피두센터에서는 달랐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가만히 서서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즐겼다. 미술관 앞마당 광장에는 시민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처럼 미술관과 도시는 서로 감미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예술을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려는 퐁피두의 의도가 잘 담겨 있었다.
퐁피두 센터 광장 전경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퐁피두 센터 광장 전경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비난 속에서 지어진 퐁피두센터 설계는 당시 30대 무명 건축가였던 두 사람이 맡았다.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와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였다. 로저스와 피아노는 배관과 전선 그리고 에스컬레이터 등 건물의 구성요소를 밖으로 드러낸 인사이드 아웃 방식으로 건물을 설계했다. 퐁피두 센터를 처음 마주했을 때 공사가 덜 끝난 건물 앞에 서 있는 듯했던 것은 바로 인사이드 아웃 방식 탓이었다. 퐁피두센터는 구조물을 과감히 드러내는 하이테크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예시다. 건물의 기능적 요소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기술 자체를 미학으로 삼는 방식이라고 한다.
1980년, 퐁피두 센터 에스컬레이터에 있는 [좌] 건축가 렌조 피아노 [우] 리처드 로저스 / 사진출처. © Centre Pompidou
1980년, 퐁피두 센터 에스컬레이터에 있는 [좌] 건축가 렌조 피아노 [우] 리처드 로저스 / 사진출처. © Centre Pompidou
미술관 내부는 기둥 하나 없이 뻥 뚫린 구조였다. 그런 덕분에 전시 공간 구조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퐁피두의 상설전은 연대기적 서사를 중시한 것으로 보였다. 상설전은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주요 사조들을 각각의 공간에 배치해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관람객은 시대별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며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관람 당시, 마치 현대미술사 교과서 안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퐁피두 센터 전시 내부, 뒤샹의 자전거 바퀴 / 사진. © 김선경
퐁피두 센터 전시 내부, 뒤샹의 자전거 바퀴 / 사진. © 김선경
퐁피두 센터 전시 내부, 장 뒤뷔페 자화상 <dhôtel nuancé d'abricot> (1947) / 사진. © 김선경
퐁피두 센터 전시 내부, 장 뒤뷔페 자화상 <dhôtel nuancé d'abricot> (1947) / 사진. © 김선경
파리 퐁피두센터는 2025년 12월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건물 외벽에 사용된 석면을 제거하고 화재 안전 시스템을 강화하며 건물의 접근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 목표다. 공사 기간 동안 소장품들은 그랑팔레로 이전되거나 각국에 있는 분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혹시 퐁피두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 기간에는 그랑팔레나 퐁피두 분관을 찾는 것이 낫다.

퐁피두 컬렉션 중 일부는 한국에 올 예정이다. 올해 10월에 서울의 랜드마크인 여의도 63빌딩에 퐁피두센터의 서울 분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서울 분관은 앞으로 4년 동안 운영할 예정이다. 퐁피두센터장 로랑 르봉은 “최근 급성장한 한국 미술 시장과 젊은 세대의 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분관을 계획한 이유”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서울은 꾸준히 국제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런던에서 시작한 국제아트페어 프리즈가 아시아 첫 무대로 서울을 선택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프리즈 서울은 2022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올해 9월에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서점이 압구정 도산공원에 문을 열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서울이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퐁피두 서울분관은 63빌딩의 지하부터 지상 4층까지 사용할 예정이다. 전에 아쿠아리움이 있던 공간이다. 설계는 인천국제공항을 디자인한 프랑스 건축가 장 미쉘 빌모트가 맡았다고 한다. 그는 퐁피두 서울을 ‘빛의 상자’라는 주제로 설계했다. 건물 벽에 설치한 작은 유리 모듈이 낮에 햇빛을 흡수하고 밤에는 흡수한 에너지를 내뿜어 ‘빛의 상자’처럼 반짝이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파리 본관이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미학을 드러냈다면 서울 분관은 기술적 장치를 내세운 미래적인 공간으로 꾸며졌다. 서울 본관 입구에는 광장 대신 넓은 정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독자가 곧 서울 분관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마주할 작품은 장 뒤뷔페의 조각일 것이다. 서울 분관 설계자 빌모트는 “뒤뷔페의 조각이 프랑스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뒤뷔페는 프랑스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아르 브뤼(Art Brut)'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르 브뤼는 미술 제도와 교육에서 벗어난 가공되지 않은 그대로의 예술을 뜻한다. 어린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 손에서 탄생한 거칠고 본능적인 창작물이 바로 아르 브뤼이다. 뒤뷔페는 서양 미술의 전통 기법이나 ‘고급 예술’의 규칙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 기준에 맞서 싸운 작가이다. 그는 아르 브뤼와 같이 덜 다듬어지고 서툰 작업을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석탄 가루나 모래 그리고 시멘트 같은 비전통적 재료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뒤뷔페는 단지 재료를 다양하게 실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관람객의 조각을 감상하는 방식을 변주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 <형상의 탑>이 대표적인 예이다. 높이가 약 24미터인 탑 형태의 조각은 낙서 같은 선과 강렬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방문객은 조각의 내부를 걸어 올라가면서 조각 속을 체험할 수 있다. 조각을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으로 놓아두지 않고 그 안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제작한 것이다. 퐁피두 서울 분관 설계를 맡은 빌모트는 재료와 감상 방식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전통과 권위에 도전한 뒤뷔페가 프랑스 현대미술을 대표한다고 본 것 아닐까?
장 뒤뷔페 <형상의 탑 (Tour aux Figures)> 생제르맹 섬 도립공원 / 사진. © ADAGP / CD92 – Willy Labre
장 뒤뷔페 <형상의 탑 (Tour aux Figures)> 생제르맹 섬 도립공원 / 사진. © ADAGP / CD92 – Willy Labre
장 뒤뷔페 형상의 탑 내부, ‘가스트로볼브’, 생제르맹 섬 도립공원 / 사진. © ADAGP / CD92 – Willy Labre
장 뒤뷔페 형상의 탑 내부, ‘가스트로볼브’, 생제르맹 섬 도립공원 / 사진. © ADAGP / CD92 – Willy Labre
퐁피두 센터는 계속해서 분관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메츠와 말라가 그리고 브뤼셀과 상하이에 이어 서울까지 총 다섯 개 분관이 있다. 2027년에는 브라질 파라나주에 이어서 2030년에는 미국의 저지시티에 분관이 더 세울 예정이다. 이 계획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이어질 퐁피두 파리 재건축 기간과 일치한다. 분관을 세워 파리 본관의 공백을 채우려는 꾀로 보인다. 동시에 ‘프랑스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퐁피두 센터는 해외 분관 설립 목표를 “프랑스 문화를 전 세계와 나누고 다양한 국제 예술 현장과 풍부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퐁피두가 세계에 내놓는 ‘프랑스 문화’는 무엇일까. 단순히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퐁피두 센터의 설립 목적과 맞닿아 있는 ‘예술을 사회적 자산으로 보고 공공과 나누려는 태도’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