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개월 일해도 연차…휴가 일수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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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노동계와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 상반기까지 연차휴가 제도를 강화하는 로드맵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1년 이상 근속 근로자에게 기본 15일의 연차를 부여하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6개월 이상 근속 직원에게도 연차휴가를 주도록 할 계획이다. 연차 일수도 현재 2년 차 기준 15일에서 선진국 수준(20일)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난해 말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로 연차 미사용 수당이 높아지면서 연차 소진율이 뚝 떨어지고 있다.
연차휴가 늘린다는 정부…휴가보다 돈 택하는 직장인
"연 1000만원 받고 연차 안쓸래"…영세업체는 꿈도 못꾸는데
금융권 A사는 올해 여름 휴가부터 연차 소진율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 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이 뛰면서 연차 미사용 수당액도 크게 늘어나자 휴가 대신 수당을 선택한 직원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연차 미사용 수당은 통상임금을 바탕으로 계산된다. A사는 5일 이상 연차를 붙여 쓰면 100만원의 휴가비를 지급하는 ‘프로모션’까지 진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제조업체 B사도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이 30% 이상 뛰면서 인건비가 급증했는데 연차수당까지 치솟자 비상이 걸렸다. 직원들이 휴가를 가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 연차를 쓰는 직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B사는 올해 인사팀 핵심 성과지표를 ‘연차 사용률 제고’로 설정하고 사용 촉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 휴식권 보장 대신 현금성 보상
17일 경영계에 따르면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목표로 연차를 확대하고 소진율을 제고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연차 미사용 수당이 ‘숨은 보너스’로 여겨지고 있다. 연차휴가 제도가 ‘휴식권 보장’에서 ‘현금 수당’으로 왜곡되는 흐름이 굳어지면서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나온다.현대자동차 사례는 연차 확대가 휴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연차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차는 1년 개근 직원에게 10일의 기본 유급휴가를 주고 1개월 개근 시 하루 유급 휴가를 추가한다. 기본 유급휴가는 2년 이상 계속 근무하면 1년마다 하루 늘어나 근속 30년 차가 되면 연차휴가만 총 50여 일이 발생한다.
이처럼 휴가가 충분히 주어지지만 소진율은 낮고 회사의 비용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한 현대차 직원은 “하루 통상임금이 18만원 안팎이고 연차 미사용 수당은 통상임금에 50%가 가산된다”며 “연차를 고스란히 모으면 수당이 연 1000만원에 육박하니 소진하는 직원이 거의 없다”고 했다.
다른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연말 미사용 수당을 성과급처럼 여기는 직원이 많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연차 촉진 제도’가 있지만 노조 반발, 단체협약과의 충돌 우려로 활용이 어렵다”고 했다.
◇ 영세기업 근로자에겐 그림의 떡
이런 추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6월 직장인 19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연차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14.7%가 ‘연차 수당을 받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특별한 휴가 계획 없음’(14.6%), ‘대체인력 부족’(14.1%) 등이 뒤를 이었다. 근로자 300명 이상 대기업에선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연차 수당을 받기 위해 휴가를 가지 않는다는 응답이 18.4%에 달했다.반면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연차 수당도 받지 못할뿐더러 대체인력 부족으로 연차를 쓰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설문조사에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25.6%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이유로 ‘대체인력 부족’을 꼽았다. ‘특별한 휴가 계획 없음’(18.6%) ‘업무량 과다’(11.6%) 등이 뒤를 이었다. 연차휴가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화한 셈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당 제도 개편, 대체인력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연차휴가와 그에 비례한 현금 보상만 늘어나고, 정작 근로시간은 줄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곽용희/남정민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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