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31일 발표한 첫 세제개편안은 확장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세’로 요약된다. 이번 개편안으로 향후 5년간 추가로 걷히는 세수는 35조6000억원에 달하며, 이 중 약 절반을 대기업이 부담한다. 상법과 노동법 규제에 더해 법인세 부담까지 기업에 전가할 경우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인세율 1%포인트 인상
기획재정부가 이날 공개한 ‘2025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법인세율 과세표준 4개 구간의 세율은 각각 1%포인트 올라간다. 과세표준 3000억원을 초과할 경우 적용하는 법인세 최고세율은 24%에서 25%로 높아졌다. 과세표준 2억원 이하는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는 20%,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는 22% 등으로 오른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명박 정부 당시 25%에서 22%로 인하된 뒤 문재인 정부 때 다시 25%로 올라갔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 1%포인트를 다시 인하했는데 3년 만에 원상 복귀됐다.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은 “법인세 과세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2022년 수준으로 환원하고, 확보한 재원은 기업의 초혁신 제품 개발 지원 등을 통해 다시 기업에 되돌려주겠다”고 설명했다.
◇대형 금융회사 교육세 1.3조원 증액
기재부는 1976년 이후 유지해 오던 농·수·신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 조합원(회원)의 비과세 특례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현재 상호금융 조합원은 누구든 예탁금 3000만원, 출자금 2000만원까지 이자 및 배당소득세(14%)를 면제받고 농어촌특별세(1.4%)만 내고 있다. 이로 인해 비과세 특례가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절세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총급여가 5000만원을 초과하는 (준)조합원에 내년 5%, 2027년부터는 9% 세율을 적용할 계획이다. 농어민, 총급여 5000만원 이하의 (준)조합원에는 비과세 혜택이 유지된다.
금융·보험업 교육세도 손본다. 현행 교육세법에 따르면 금융·보험회사는 수익의 0.5%를 교육세로 내고 있다. 내년부터는 수익이 1조원을 초과하면 0.5%가 아니라 1.0%를 교육세로 걷는다. 1조원 이하인 곳은 기존대로 0.5%의 교육세를 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전체로 보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라며 “여당이 가산 금리에 교육세를 포함하지 못하는 방안까지 추진하면 금융회사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복지 공약 재원 위한 증세
이재명 정부가 반발 여론을 감수하고 증세 기조로 돌아선 것은 조(兆)단위 지출이 필요한 대선공약을 실행하기 위한 포석을 놓으려는 목적으로 풀이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한 아동수당 확대,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부부 기초연금 감액 삭감 등 복지 공약만 추진하더라도 연간 20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수 경기가 장기간 부진한 가운데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수입은 감소하고 있다. 2023년 56조원, 지난해엔 30조8000억원가량의 ‘세수 펑크’가 났다. 올해도 31조8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21조1000억원을 빚(국채)으로 조달했다.
전문가들은 복지와 사회 안전망 예산은 늘려가는 방향이 맞지만 이를 위한 재원은 지출 구조조정과 세입 기반 확대 등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계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발 관세전쟁으로 어려운 대외 여건에서 기업 부담을 높이는 조치가 잇따른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향후 5년간 예상되는 세수입(35조6000억원)의 65%(23조3000억원)를 기업이 부담한다. 국내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법인세 인상에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까지 겹치면 경영과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