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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번 출석·560일 수감…엔비디아·TSMC 뛸때 삼성은 지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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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승계' 무죄로 10년 사법리스크 종결…'뉴삼성' 속도낸다

    '초격차 기술력' 서서히 약화
    반복되는 재판 출석·구속으로
    총수 정상적 경영 활동 불가능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2020년과 2021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주로 머문 곳은 삼성 사옥이 아니라 검찰청과 법원이었다. 검찰은 2020년 5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로 이 회장을 수시로 불러 조사했다. 이 회장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재구속돼 207일간 영어의 몸이 됐다.

    이 기간 삼성은 많은 것을 놓쳤다. 2021년 1분기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를 인수하려던 계획이 무산됐고 엔비디아, 퀄컴 등 큼지막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 고객이 떠나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가장 뼈아픈 건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AI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목돈을 투입해 유망 기업을 인수합병(M&A)했지만, 책임지고 결단을 내려야 할 최고책임자가 없던 삼성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에 발목 잡힌 삼성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30일 열린 ‘2025 삼성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30일 열린 ‘2025 삼성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뉴스1
    이 회장과 삼성을 겨냥한 검찰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수사에 대해선 애초 ‘무리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사업 경쟁력 강화, 건설 등 중복 사업의 비효율 제거라는 합병 목적에 대다수 주주도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적폐 청산 바람을 탄 일부 시민단체가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불을 지피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대적 수사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가 절정으로 치달은 2020년 6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회장 불기소와 수사 중단을 권고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 회장 기소(2020년 9월)와 함께 재판이 시작됐고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재판은 5년 가까이 계속됐다.

    2017년 4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이어진 국정농단 재판에 83차례 출석하고, 560일 수감 생활을 겪은 이 회장은 다시 법원에 발이 묶였다.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으로만 2021년 4월부터 총 113번의 재판(1·2심 합계)이 열렸고, 이 회장은 이 중 102차례 서초동 법정에 참석했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삼성이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국내 1위 기업 최고경영자의 발이 법원에 묶인 셈이다. 이 회장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언급한 글로벌 기업인 네트워크 행사인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약해진 초격차 기술력

    큰 그림을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총수의 부재에 삼성이 키워온 ‘초격차 기술력’은 서서히 약해졌다. 주력 사업부터 그랬다. 2016년 48%에 달하던 삼성전자 D램 점유율은 올해 1분기 33.7%로 떨어졌다. 방향을 잃은 전문경영인들은 중장기 투자를 주저했고, 단기 실적에 목을 맸다. 그렇게 AI 시대 주인공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줬다.

    낸드플래시(36.7%→31.9%)와 스마트폰(20.5%→20.0%) 점유율도 떨어졌다. 이 회장이 신사업으로 낙점하고 드라이브를 건 파운드리에선 40%포인트 수준이던 TSMC와의 격차가 6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주력 사업만 약화한 게 아니다. 한때 경쟁사이던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과 달리 삼성의 AI 실력은 이제 저만치 아래로 밀려났다. AI를 현실에 구현하는 피지컬 AI 시장에선 테슬라와 엔비디아 등에 밀려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테슬라는 조만간 휴머노이드를 공장에 투입할 정도로 실력을 키웠지만 삼성은 아직 시제품조차 내놓지 못했다.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시가총액에서 삼성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삼성전자의 시총(달러 환산 기준)은 2016년 말 2039억달러(약 284조원)에서 지난 16일 기준 3033억달러로 48.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엔비디아 시총은 같은 기간 575억달러에서 4조1790억달러로 716.8% 급증했다. 삼성전자 밑에 있었던 TSMC 시총도 1조2320억달러로 삼성전자의 네 배가 됐다.

    ◇대만 뛸 때 주저앉은 한국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을 보는 경제·산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착잡함을 토로한다. 삼성이 과거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2~3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 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란 우려는 현실화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 20위에서 올해 27위로 떨어졌다. 송승헌 맥킨지앤드컴퍼니 한국 대표는 “국가 경쟁력 하락은 한국 기업 경영의 효율성 순위가 44위로 21계단 미끄러진 영향이 가장 크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 약화가 한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TSMC를 필두로 반도체, 서버로 연결되는 AI 하드웨어 생태계가 굳건한 대만의 국가 경쟁력은 지난해(8위)보다 두 계단 뛰어 6위로 올라섰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빚어낸 합작품이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과도한 기업 옥죄기 사례가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황정수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부 전자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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