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매드슨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페르소나였으며 <델마와 루이스>의 잊을 수 없는 악역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표정을 가졌지만 (<저수지의 개들>), 그 누구보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을 줄 아는 (<프리 윌리>) 배우였다. 아직도 많은 시간 동안 타란티노와 작품을 만들고, 할리우드를 누비고 다닐 멋진 악당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그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지난 7월 3일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매드슨은 시카고 출신이다. 그의 선 굵은 얼굴과 건장한 체격은 어렵지 않게 그가 중부 출신임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그에겐 1960년대의 많은 미국 가정이 그러했듯, 참전 용사인 아버지가 있었다. 종전 이후 그의 아버지는 소방관이 되었고, 어머니는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조언에 따라 예술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 가족이 어떻게 시카고 트리뷴의 간판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 평론가와 연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매드슨 역시 이버트의 조언으로 배우가 되었는지 역시 확실치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는 시카고의 유명 극단인 스테픈울프 극단(Steppenwolf Theater Company)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배우, 존 말코비치의 조수로 배우 일을 시작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한 존 배덤 감독의 <위험한 게임> (1983)으로 영화까지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이후 많은 영화에서 악역 (<델마와 루이스>의 폭력 남편 역을 포함) 캐릭터를 전전한 이후 드디어 그는 타란티노와 조우한다. 타란티노의 역작이자 영화사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에 합류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타란티노와 함께 매드슨은 스타로 부상한다. 하비 카이틀과 팀 로스를 포함한 무려 6명의 역대급 캐릭터 배우들이 ‘미스터’로 활약하는 이 ‘예술적인 시궁창(artistic gutter)’에서 그는 단연코 가장 잔인하고도 매력적인 ‘미스터 블론드’로 시네필들의 취향을 사로잡았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후 그는 타란티노의 ’여신‘이 되었다. 타란티노는 차기작, <펄프 픽션>의 주인공 역인 ’빈센트 베가‘ 역을 매드슨에게 제안했지만, 어떤 연유에선지 그는 거절했다 (역은 존 트라볼타에게 돌아갔다). 그럼에도 매드슨은 타란티노의 마음 한구석에 꾸준히 남아있던 것으로 보인다. 몇 년이 지나 매드슨은 타란티노의 야심 프로젝트 <킬빌>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 빌의 남동생, '버드'로 귀환했고 늘 그러하듯, 그는 영화 속 그 어떤 캐릭터보다 빛나는 악당이었다.
매드슨의 필모그래피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자 인물이지만 사실상 그는 다작을 했던 배우였다. 일반적으로 ‘다작’이 의미하는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영화, 그러니까 많게는 17편 (2009년)에서 적어도 10편 이상, 그는 비디오로 직행하거나 목소리 더빙만 하는 영화 등, 일반 관객은 알지도 못할 존재감을 가진 영화들까지 맡아 출연했다. 이에 매드슨은 한 인터뷰에서 그의 강한 이미지답지 않은 평범한 표정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어떤 영화들은 10분 출연한 것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마케터들이야 내 이름과 얼굴을 전면에 걸고 DVD를 팔아댔죠.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중 하나는 내가 6명의 내 아이들을 다시 트레일러 같은 곳에 살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사람들이 일을 주면, 별로여도 난 해야만 했어요. 집에 식량을 사고, 차의 연료를 넣기 위해서요.”
영화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 사진. ⓒIMDb
극단에서부터 단련된 출중한 연기와 그가 남긴 극악무도한 (그렇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들, 그리고 타란티노와 함께 빚어낸 장르 걸작들 역시 매드슨을 기억하게 하는 업적이지만 나에게는 오래전에 그가 남긴 이 인터뷰가 그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는 훌륭한 배우였지만 무엇보다 좋은 인간이었고 아버지였다. 매드슨은 이 중 하나도 이뤄내지 못하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배우,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그의 강렬한 스크린 페르소나만큼이나 위협적이고 인상적인 일침을 주고 떠났다. 물론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매드슨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 다음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매드슨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워진다. 타란티노 영화에서의 매드슨은 크리스마스트리의 별이자, 고기잡이배의 닻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아마도 찾아내지 않을까. 매드슨이 부재한 타란티노의 다음 작품에서도 관객들은 매드슨이 있을 만한 자리에, 했을 법한 캐릭터를 떠올리며, 아마도 그가 있는 또 다른 버전의 영화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마이클 매드슨 / 사진. ⓒ2017 George Pimentel, 출처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