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AI 영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주요 키워드이다. 작년 영화제가 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단편 영화들을 하나의 섹션으로 모아 선보였다면 올해에는 영화제의 개막작에 AI가 각본을 쓴 영화로 선정하여 주목받기도 했다. 개막작, <그를 찾아서>는 감독 피오르트 비니에비츠가 독일의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의 시나리오를 AI에 학습시켜 만든 실험영화로,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작품의 생소함과 난해함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작년의 AI 단편 섹션과는 달리, 적어도 AI와 영화의 만남을 소개하거나 쇼케이스하는데 있어서 개막작으로서의 상영이 효과적인 무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제작에 적지 않은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는 AI를 영화제에서 중심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아직 대중화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이 기술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굳이 그 해 영화제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개막작으로 선정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영화 '그를 찾아서'의 한 장면. / 사진 제공. BIFAN
영화 '그를 찾아서'의 한 장면. / 사진 제공. BIFAN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이번 부천의 개막작 상영이 좋았든 싫었든 이제는 AI와 공생할 수밖에 없다는 (적어도 영화를 만들거나 보는 행위에 있어서도)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린 CGV AI 영화제는 정확히 그러한 경향을 반영한 국내 첫 AI 영화제이다 (적어도 메이저 레벨로는 말이다). 영화제는 총 9편을 두 개의 섹션(수상작&노미네이트 작품)으로 나누어 용산 아이파크를 포함 총 31개의 극장에서 상영했다.

그 중 장권호 감독의 <고해성사>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CGV AI 영화제에서 모두 선정된 작품으로 로봇을 처단하려는 인간들을 피해 죽기 전 고해성사를 하려는 로봇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12분에 걸친 짧은 단편이지만 영화는 궁극적으로 인간만큼 진화해 버린 로봇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 ‘로이’(룻거 하우어)가 마주했던 삶의 딜레마가 이 작품 속 휴머노이드를 통해 반복된다고 할 수 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CGV AI 영화제에서 선정된 장권호 감독 '고해성사'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왓챠피디아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CGV AI 영화제에서 선정된 장권호 감독 '고해성사'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왓챠피디아
주목할만한 또 다른 작품으로 <프롬프트: 눈물을 돌려줘>(최현유) 는 AI가 만든 이미지와 실사가 공존하는 일종의 ‘하이브리드형‘이다. 영화는 ’신둘룰루 (신데렐라의 패러디)‘ AI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시점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영화 속 캐릭터이자 주인공, ’신둘룰루‘와 연기적인 협상을 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코미디다. <프롬프트: 눈물을 돌려줘>는 AI와 인간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이슈들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아직은 AI가 넘을 수 없는 영역, 즉 배우와 배우 연기가 가진 고유한 미학에 대해 얕지 않은 물음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Thanks for Calling>(신동영) 은 서양인 캐릭터, 혹은 만화나 동물 캐릭터를 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AI 영화와는 달리 서울을 배경으로 한국인(에 가까운) 캐릭터의 주인공, ’동진‘이 중심이 되는 AI 영화다. 영화는 콜센터 심리상담사 동진이 어느 날 걸려 온 전화의 의뢰인과 사랑에 빠지면서부터 생기는 이야기를 그린다. 스모그로 점령되어 무채색이 되어버린 서울의 전경과 그 사이를 무심하게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모습은 사실상 AI가 가진 (아직은) 비생물적이고도 이질적인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동진은 궁극적으로 통화 속 주인공을 찾아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기로 한다. 둘은 이제 목소리가 아닌, 얼굴을 마주하고 동진의 유토피아로 함께 떠난다.
CGV AI 영화제 포스터. / 이미지 출처: CGV 뉴스룸
CGV AI 영화제 포스터. / 이미지 출처: CGV 뉴스룸
CGV AI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작품들의 공통된 경향, 혹은 더 넓은 맥락에서 현재 제작되고 있는 AI 영화들의 경향이라면 등장인물이 대부분 동물이나, 로봇, 혹은 서양(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등 리얼리즘보다는 판타지, 로컬보다는 글로벌에 근거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제작된 AI 영화들의 경우 이러한 캐릭터와 이야기에 한국어 더빙을 입히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인다. 철저히 비/한국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지극히 한국적인 목소리와 언어를 입고 등장하는 것은 마치 과거 더빙 버전의 주말의 영화가 그랬듯, 적잖이 어색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AI 영화의 ’이질성‘ 혹은 ’탈현실성‘은 궁극적으로 영화의 주제와 소재에 있어 훨씬 더 광범위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틀이 된다. 이번 CGV AI 영화제는 AI 영화의 가능성과 분명한 한계, 그리고 현시점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AI 영화를 쇼케이스하고 관객들이 접근 가능한 수준의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한 시의적절한 행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혁신이 시공간의 전복에서 시작되었다면 AI 영화는 이제 또 다른 차원의 전복을 준비하고 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