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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외화 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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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외화 예금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1991년 카를로스 메넴 정권 시절 ‘1페소=1달러’ 고정 환율로 출발했다. 그러다 2002년 고정환율제가 폐지됐고, 지금은 1138페소를 줘야 1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20여 년 사이 화폐 가치가 1000분의 1 이하로 추락한 것이다.

    이런 나라에선 자국 통화로 저축하는 게 의미가 없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돈을 벌면 곧바로 달러로 환전하는 식으로 통화 가치 하락에 대응한다. 국민이 페소화 대신 외국 은행의 달러 예금이나 현찰로 보유 중인 돈이 2712억달러(약 377조원)로,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의 10배가 넘는다.

    통화 가치가 비교적 안정된 나라 중에도 달러 자산 비중이 큰 나라가 적지 않다. 대만이 대표적이다. 이 나라의 예금을 포함한 달러 기반 자산 총액은 대만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는 1조달러(약 139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달러 예금만 발라내도 잔액이 3000억달러(약 417조원)에 달한다. 한국도 달러 자산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나라로 분류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가 원금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 2000조원 중 7% 남짓인 142조3000억원이 외화(주로 달러) 예금이다. 2020년(98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50% 가까이 늘었다.

    한국인의 외화 예금 잔액이 불어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미국 주식 등 달러 상품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부쩍 늘었다. 자녀가 유학을 갔거나, 해외 사업을 하는 사람도 일정액의 달러를 비축 중이다. 자산가들은 위험 분산 차원에서 달러 자산을 사들인다. 외환위기 수준의 경제난, 지정학적 위험 등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을 가정해 자산을 지킬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대만이 달러 자산을 쌓아두는 것도 중국과의 전쟁이나 지진 같은 돌발 악재 대비 차원이란 분석이 많다.

    예금자 보호 업무를 맡고 있는 예금보험공사가 2027년까지 1조8500억원어치의 달러를 확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달러 예금 가입자 증가세가 그만큼 가파르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달러를 사 모은 결과가 아닌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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