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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당근 없이 채찍만 드는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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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유지 요건 강화 취지는 공감
    유망 中企 국내 상장 기피 우려원종환 기자
    중소기업부
    “모든 게 규제 일변도여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가 더 심화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최근 만난 인공지능(AI) 관련 기업 대표는 금융당국이 코스닥시장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좀비기업을 퇴출해 시장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유인책 없이 규제만 늘면 유망한 기업들이 국내 상장을 꺼릴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 2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28년부터 시가총액이 300억원에 미달하는 한계기업을 코스닥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상장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현재 30억원인 상장 유지 매출액 요건을 2029년 100억원으로 올린다. 또 올 하반기부터 감사의견이 2회 연속 미달인 기업은 즉시 상장 폐지한다. 상장사 지위를 유지하는 재무 요건을 엄격히 해 국내 증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이 제도가 시행되면 코스닥 상장의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장사 20%를 퇴출하는 강경책이 자칫 전체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는 “2029년부터 코스닥시장 퇴출 기준이 되는 연 매출 100억원은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 요건인 매출 3500만달러(약 502억원)의 5분의 1 수준”이라며 “나스닥의 잠재 가치가 코스닥의 열 배인 점을 감안하면 코스닥 대신 나스닥행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상장한 기업 중 스스로 상장 폐지를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의무공시나 주주환원 등으로 막대한 상장 유지 비용을 부담할 바에 차라리 상폐를 택하는 게 나을 수 있어서다. 지난해 자진 상폐를 추진한 기업은 7개로 2021년(2개)에 비해 급증했다. 락앤락과 제이시스메디칼, 신성통상처럼 수익성이나 건전성 지표가 우수한 기업도 많았다.

    이 때문에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할 ‘당근 정책’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법인세, 배당소득세 감면 등을 토대로 국내 증시를 끌어올리려는 밸류업 세제 개편안은 탄핵 정국 이후 부자 감세라는 거대 야당의 반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일 정부가 재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야당의 거센 반발로 법 통과가 여전히 불확실하다.

    중소기업 성장을 돕기 위한 코넥스시장이 열린 지도 10년이 지났다.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상장 이후 혜택이 부족해 지난해 상장 기업이 6곳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 기업에 대해 채찍만 들면 개인뿐 아니라 기업들까지 국내 증시를 외면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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