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YS-이회창 vs 尹-韓'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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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갈등을 빚을 때마다 소환되는 사람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권력 1, 2인자는 늘 애증의 관계지만, YS와 이 전 총재만큼 반목과 충돌을 되풀이한 사이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덧붙여 한 대표와 이 전 총재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구석이 많다.
이 전 총재는 ‘이회창 신드롬’을 등에 업고 정계에 입문했다. 1989년 대법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하던 그는 국회의원 재선거 때 여야 후보 전원을 불법 선거 혐의로 고발하고, 노태우 대통령과 여야 총재들에게까지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선거 뒤에는 부정선거 풍토를 막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선관위원장직을 던졌다. ‘대쪽’ ‘법치’의 상징이 된 그는 김영삼 정부 감사원장에 이어 국무총리가 된 뒤 127일 만에 사퇴하곤 다시 신한국당 대표로 영입됐다.
한 대표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46세 최연소 검사장에 올랐다가 조국 수사 이후 1년 반 새 네 번의 좌천이라는 시련을 겪었다. 그의 법무부 장관 취임 100일 때에 ‘검수원복 감사’ 문구가 달린 축하 화환이 법무부 청사 앞을 뒤덮을 정도로 두꺼운 지지층이 형성됐다. 막강한 팬덤을 타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가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에 컴백했다.
대통령 가족 문제로 마찰을 빚은 것도 공통점이다. 이 전 총재는 YS 차남 현철씨의 정계 진출을 거부해 YS의 미움을 샀고, 한보 사건에서도 엄정 대응 방침을 고수해 현철씨는 결국 구속기소와 함께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만찬이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 ‘민생 우선’이 이유라고 하지만, 의대 증원과 관련한 갈등 여파로 보인다.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이 주재한 오찬 자리에 한 대표가 건강을 이유로 불참한 이후 또다시 둘 간 만남 자체가 난제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YS-이회창 간 권력투쟁은 10년 정권 상실로 이어졌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이 전 총재는 ‘이회창 신드롬’을 등에 업고 정계에 입문했다. 1989년 대법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하던 그는 국회의원 재선거 때 여야 후보 전원을 불법 선거 혐의로 고발하고, 노태우 대통령과 여야 총재들에게까지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선거 뒤에는 부정선거 풍토를 막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선관위원장직을 던졌다. ‘대쪽’ ‘법치’의 상징이 된 그는 김영삼 정부 감사원장에 이어 국무총리가 된 뒤 127일 만에 사퇴하곤 다시 신한국당 대표로 영입됐다.
한 대표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46세 최연소 검사장에 올랐다가 조국 수사 이후 1년 반 새 네 번의 좌천이라는 시련을 겪었다. 그의 법무부 장관 취임 100일 때에 ‘검수원복 감사’ 문구가 달린 축하 화환이 법무부 청사 앞을 뒤덮을 정도로 두꺼운 지지층이 형성됐다. 막강한 팬덤을 타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가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에 컴백했다.
대통령 가족 문제로 마찰을 빚은 것도 공통점이다. 이 전 총재는 YS 차남 현철씨의 정계 진출을 거부해 YS의 미움을 샀고, 한보 사건에서도 엄정 대응 방침을 고수해 현철씨는 결국 구속기소와 함께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만찬이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 ‘민생 우선’이 이유라고 하지만, 의대 증원과 관련한 갈등 여파로 보인다.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이 주재한 오찬 자리에 한 대표가 건강을 이유로 불참한 이후 또다시 둘 간 만남 자체가 난제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YS-이회창 간 권력투쟁은 10년 정권 상실로 이어졌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