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에 매년 10만 명이 찾는 폐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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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영식의 찾아가는 예술 공간
예술로 되살아난 폐교
충남 당진시 '아미미술관'
'배움터'라는 학교의 장소성은
미술관으로 변모한 지금도 유효하다
예술로 되살아난 폐교
충남 당진시 '아미미술관'
'배움터'라는 학교의 장소성은
미술관으로 변모한 지금도 유효하다
‘판타지’(fantasy, 환상)는 ‘일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과 동떨어진 ‘비(非)일상’을 뜻한다. 판타지 장르는 음악, 문학, 영화 등의 장르에서 형식의 구애 없이 자유로운 세계관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판타지 예술은 ‘비일상에 대한 갈망’이 ‘일상’의 기쁨과 좌절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망상(妄想)과는 다르다. 판타지에서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꿈꾸는 자만이 볼 수 있는 비일상이 숨어있다. 충남 당진시에 위치한 '아미미술관'은 미술관의 출발점과 전시 방향에서, 일상과 비일상의 판타지 공간이다.
‘아미미술관’은 초등학생 수 감소로 폐교한 ‘유동초등학교’를 2011년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한국의 초등학생수는 2000년 4,019,991명 2023년 2,603,929명으로, 초등학교는 1986년 6,535개교에서 2000년 5,268개교까지 감소했다. (출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본통계)
일상의 공간이던 유동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은 사라지고, 비일상으로 인도하는 아미미술관이 같은 자리에 있다. 교실의 칠판에 남아있던 낡은 분필 자국들은 캔버스에 새겨진 예술의 흔적으로 바뀌었다. 가까운 친구들이 소꿉놀이하며 웃음꽃을 피우던 그 시절의 기억처럼, 아미미술관은 '친구'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미(AMI)'를 품고 있다.
아미미술관의 변신은 상설전시공간인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교실과 복도에서부터 시작한다. 상설전시장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은 유동초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나무’가 주인공이다. 복도의 나무들은 전부 버드나무 폐목이다. 그 위에 인공적인 색깔을 입혀 새로운 느낌을 선보이는데, 붙여진 깃털은 실제 기러기 깃털을 사용했다. 폐목과 깃털,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존재를 붙여 놓음으로써, 관람객들에게 판타지와 상상력을 선사한다. 과거 교실이자 현재 전시 공간을 들어가면, 인공건물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나무들이 창문의 아이비(ivy) 덩굴과 어우러진다.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사라져가는 요즈음 지역의 건축과 문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는 아미미술관의 지향점을 느낄 수 있다.
수백 년에 걸쳐 자리 잡아온 자연을 없애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을 ‘새로운 것’이라 칭하며 자만에 빠진다. 그러나 그 새로운 것은 원래 있던 것의 죽음 위에 만들어진다. 당진에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베어져야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수많은 나무가 인간이 만드는 인공의 새로움을 위해 무고하게 희생된다. 일상에서 새로운 현재는 죽은 과거와 함께하지 못하지만, 아미미술관에서만큼은 새로운 판타지로 공존하며 재탄생한다. 아미미술관의 조은호 학예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은 폐목이라고 생각했던 나뭇가지에서, 전시 중에 새싹이 돋았다고 한다. 어쩌면 유동초등학교 어린아이들의 생명력과 활기가 몇십년이 지나서도 죽은 나무에 실제로 생명을 불어넣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뛰놀던 교실 복도에서 새 생명이 탄생했기에 더욱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이 부정한 과거의 흔적 속에서 자연은 기어이 새로운 생명을 틔워내며, 그 속에 담긴 순환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현재 아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초청전, ‘방랑자 환상곡’은 상설전시관에서 보여준 삶과 죽음의 판타지 연장이다. 초청전의 제목, ‘방랑자 환상곡’은 기악 작품의 환상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방랑자 환상곡(Wanderer fantasy)’에서 빌려왔다. 환상곡은 형식적 제약을 받지 않고 예술가의 자유로운 세계관을 한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아미미술관의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는 여섯 명의 작가들도 인생 자체가 환상일 수 있음을 표현하며,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초청작가 6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환상과 환영을 이야기한다. 김상덕 작가는 자신이 매력을 느끼면서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리고 있다.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역설적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에게 내재한 혼란과 파괴의 열망을 그러낸다. <사특한 놈들의 잔당>은 촉수 달린 괴물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귀여운 탈을 써서 놀이기구인 척하는 것이다. 즐거운 놀이동산 같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괴물의 귀여운 외모가 우리에게 역설적이게도 공포심을 심어준다. 허현주 작가는 존재가 ‘있음(有)’에서 ‘없음(無)’으로 돌아가는 순간과 경계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는 물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실존하지 못한다. 사라짐(無)과 존재(有)의 판타지는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재가 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을 사라지는 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움직이는 에너지(有)를 다 써버리는 흔적(無)의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지오최 작가의 <고블린 밸리 하늘을 나는 생명의 천사>는 리본이 달린 계란프라이들이 광대한 계곡과 하늘을 배경으로 비행하고 있다. 작가에게 어릴 적 계란프라이의 노른자는 마치 빛을 내뿜는 태양처럼 보였다. 어렸을 때 먹은 계란프라이는 선물과도 같아서, 기쁨을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아 리본 달린 계란프라이를 화면 가득 그려냈다. 권기동 작가는 일상의 한 장소를 재구성해서 또 다른 비일상의 공간을 창출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작품 <Mr. D’z>를 보면, 마릴린 먼로가 뒤에 보이지만, 그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간판이다. 그런데 앞쪽 청년은 실제 예쁜 여성인 줄 알고 힐끔 곁눈질하고 있다. 이렇게 <Mr. D’z>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실제와 허구가 공존한다. 이가은 작가의 <아화구상도>는 한 사람의 아홉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작품에는 뼈, 식물, 꽃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뼈에 관한 질병을 겪으면서, 자신의 일부가 잘려도 끊임없이 삶을 지속하는 식물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쓰러진 여인의 뒷모습은 죽음을 표현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보면 생명이 피어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진다. 앞서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에서 봤던 것처럼, 폐목이 다시 생명을 얻는 순환의 과정과 동일하다. 홍시연 작가는 마음의 불안을 감추고 위장하는 작품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다. 제목<Camouflaged>는 ‘위장’을 뜻한다. 단체 사진의 주인공들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얼굴은 얼룩말이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나약함을 숨기는 위장의 수단이자,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불확실성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내면을 숨기고 싶어하면서도 스스로의 모습을 과감히 드러내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홍시연 작가의 <Camouflaged>는 현대인의 이런 이중성을 표현한다. 이들 여섯 명의 초청작가들은 환상과 환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미미술관의 초청전에 가장 적합한 선택으로 보인다.
당진의 유동초등학교는 1967년에 개교하여 1993년에 폐교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기능은 폐교로 끝나지 않았다. 현재 이곳은 미술관으로 전환되어, 유동초등학교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장소이자 또 다른 학교로 활용되고 있다. 연간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 당진을 알리는 중요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지역 학생들을 위한 창의체험학교로서 새로운 교육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가 폐교된 후 미술관으로 태어난 아미미술관에서, 폐교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시작임을 보게 된다. 최영식 칼럼니스트
일상의 공간이던 유동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은 사라지고, 비일상으로 인도하는 아미미술관이 같은 자리에 있다. 교실의 칠판에 남아있던 낡은 분필 자국들은 캔버스에 새겨진 예술의 흔적으로 바뀌었다. 가까운 친구들이 소꿉놀이하며 웃음꽃을 피우던 그 시절의 기억처럼, 아미미술관은 '친구'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미(AMI)'를 품고 있다.
아미미술관의 변신은 상설전시공간인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교실과 복도에서부터 시작한다. 상설전시장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은 유동초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나무’가 주인공이다. 복도의 나무들은 전부 버드나무 폐목이다. 그 위에 인공적인 색깔을 입혀 새로운 느낌을 선보이는데, 붙여진 깃털은 실제 기러기 깃털을 사용했다. 폐목과 깃털,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존재를 붙여 놓음으로써, 관람객들에게 판타지와 상상력을 선사한다. 과거 교실이자 현재 전시 공간을 들어가면, 인공건물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나무들이 창문의 아이비(ivy) 덩굴과 어우러진다.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사라져가는 요즈음 지역의 건축과 문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는 아미미술관의 지향점을 느낄 수 있다.
수백 년에 걸쳐 자리 잡아온 자연을 없애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을 ‘새로운 것’이라 칭하며 자만에 빠진다. 그러나 그 새로운 것은 원래 있던 것의 죽음 위에 만들어진다. 당진에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베어져야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수많은 나무가 인간이 만드는 인공의 새로움을 위해 무고하게 희생된다. 일상에서 새로운 현재는 죽은 과거와 함께하지 못하지만, 아미미술관에서만큼은 새로운 판타지로 공존하며 재탄생한다. 아미미술관의 조은호 학예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은 폐목이라고 생각했던 나뭇가지에서, 전시 중에 새싹이 돋았다고 한다. 어쩌면 유동초등학교 어린아이들의 생명력과 활기가 몇십년이 지나서도 죽은 나무에 실제로 생명을 불어넣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뛰놀던 교실 복도에서 새 생명이 탄생했기에 더욱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이 부정한 과거의 흔적 속에서 자연은 기어이 새로운 생명을 틔워내며, 그 속에 담긴 순환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현재 아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초청전, ‘방랑자 환상곡’은 상설전시관에서 보여준 삶과 죽음의 판타지 연장이다. 초청전의 제목, ‘방랑자 환상곡’은 기악 작품의 환상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방랑자 환상곡(Wanderer fantasy)’에서 빌려왔다. 환상곡은 형식적 제약을 받지 않고 예술가의 자유로운 세계관을 한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아미미술관의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는 여섯 명의 작가들도 인생 자체가 환상일 수 있음을 표현하며,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초청작가 6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환상과 환영을 이야기한다. 김상덕 작가는 자신이 매력을 느끼면서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리고 있다.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역설적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에게 내재한 혼란과 파괴의 열망을 그러낸다. <사특한 놈들의 잔당>은 촉수 달린 괴물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귀여운 탈을 써서 놀이기구인 척하는 것이다. 즐거운 놀이동산 같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괴물의 귀여운 외모가 우리에게 역설적이게도 공포심을 심어준다. 허현주 작가는 존재가 ‘있음(有)’에서 ‘없음(無)’으로 돌아가는 순간과 경계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는 물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실존하지 못한다. 사라짐(無)과 존재(有)의 판타지는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재가 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을 사라지는 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움직이는 에너지(有)를 다 써버리는 흔적(無)의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지오최 작가의 <고블린 밸리 하늘을 나는 생명의 천사>는 리본이 달린 계란프라이들이 광대한 계곡과 하늘을 배경으로 비행하고 있다. 작가에게 어릴 적 계란프라이의 노른자는 마치 빛을 내뿜는 태양처럼 보였다. 어렸을 때 먹은 계란프라이는 선물과도 같아서, 기쁨을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아 리본 달린 계란프라이를 화면 가득 그려냈다. 권기동 작가는 일상의 한 장소를 재구성해서 또 다른 비일상의 공간을 창출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작품 <Mr. D’z>를 보면, 마릴린 먼로가 뒤에 보이지만, 그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간판이다. 그런데 앞쪽 청년은 실제 예쁜 여성인 줄 알고 힐끔 곁눈질하고 있다. 이렇게 <Mr. D’z>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실제와 허구가 공존한다. 이가은 작가의 <아화구상도>는 한 사람의 아홉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작품에는 뼈, 식물, 꽃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뼈에 관한 질병을 겪으면서, 자신의 일부가 잘려도 끊임없이 삶을 지속하는 식물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쓰러진 여인의 뒷모습은 죽음을 표현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보면 생명이 피어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진다. 앞서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에서 봤던 것처럼, 폐목이 다시 생명을 얻는 순환의 과정과 동일하다. 홍시연 작가는 마음의 불안을 감추고 위장하는 작품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다. 제목<Camouflaged>는 ‘위장’을 뜻한다. 단체 사진의 주인공들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얼굴은 얼룩말이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나약함을 숨기는 위장의 수단이자,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불확실성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내면을 숨기고 싶어하면서도 스스로의 모습을 과감히 드러내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홍시연 작가의 <Camouflaged>는 현대인의 이런 이중성을 표현한다. 이들 여섯 명의 초청작가들은 환상과 환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미미술관의 초청전에 가장 적합한 선택으로 보인다.
당진의 유동초등학교는 1967년에 개교하여 1993년에 폐교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기능은 폐교로 끝나지 않았다. 현재 이곳은 미술관으로 전환되어, 유동초등학교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장소이자 또 다른 학교로 활용되고 있다. 연간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 당진을 알리는 중요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지역 학생들을 위한 창의체험학교로서 새로운 교육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가 폐교된 후 미술관으로 태어난 아미미술관에서, 폐교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시작임을 보게 된다. 최영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