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왜 수포자야"…수학자들 깜짝 놀란 이유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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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들이 사랑한 네덜란드 대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
재미있고 신비로운 작품들
왜, 어떻게 그렸을까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
재미있고 신비로운 작품들
왜, 어떻게 그렸을까
그 남자에게 과외를 해 준 수학자들은 모두 이런 말을 하며 당황스러워했습니다. 학자들이 보기에 남자의 그림은 어려운 기하학 이론을 알아야 그릴 수 있는, ‘미술 역사상 가장 수학적인 그림’이었거든요. 많은 수학자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는 훗날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 영국의 로저 펜로즈 경(수학자 겸 이론물리학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나는 수학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겸손의 표현일 거야.’ 수학자들은 웃어넘겼습니다. 다르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수학 이론을 알아냈다고? 천재가 틀림없어. 수학을 제대로 배운다면 더욱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에게 특별 과외를 해 줘야겠어.”
하지만 이런 기대는 늘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학자들의 열정적인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남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혀 모르겠어요. 나는 수학을 정말 못 했다니까요! 계산을 못 해서 낙제한 적도 있단 말이에요.”
누구보다도 수학을 잘할 것 같은데 사실은 ‘수포자’(수학 포기한 사람)였던 이 남자는,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 오늘은 그의 신비로운 작품 세계를 돌아봅니다.
달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법
여러분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볼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1960년 에셔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달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 세상 사람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가장 흔한 세 번째 유형은 ③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일상을 살기 바쁜 이 사람들에게 달은 ‘별로 밝지 않은 가로등’과 다름없는, 사실상 의미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 이들에게 달에 관한 질문을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오겠지요. “갑자기 웬 쓸데없는 달 타령이야?”
그리고 마지막 유형인 ④예민하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달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받아들입니다. 지구에 사는 작은 인간에 불과한 자신이 그 우주 먼 곳에 있는 달의 빛을 볼 수 있다는 것, 달의 이모저모를 바라보며 그 영원한 신비를 탐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요. 매일 뜨는 달에서 이 사람들은 늘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에셔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에셔는 감각이 예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자연을 사랑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독특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종종 다른 유형에게 조금 이상하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에셔가 그랬습니다.
에셔는 공부를 못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무작정 외워야 하는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성적이 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전 과목이 하위권이었습니다. 수학은 물론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에셔는 유급에 이어 졸업 시험에서 낙제하면서 졸업장을 따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건축 기술을 배워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입학한 건축 학교에서도 그의 성적은 여전히 바닥을 맴돌았습니다.
이렇게 에셔는, 다소 뜬금없이 판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에셔는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20대 중반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로는 더욱더 작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에셔가 주로 제작한 건 풍경을 그린 정교한 판화. 그의 작품은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었습니다. “에셔의 그림은 너무 차가워. 예술가다운 뜨거운 감정이나 매력이 없어.” 냉정하게 말하자면, 에셔는 ‘그저 그런 판화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요.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만 해도 판화가로서 에셔의 능력은 별볼일 없어 보였습니다. 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도, 살면서 성공해본 경험도, 독창적인 작품 세계나 비전도 그에겐 없었으니까요. 에셔 자신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주 자괴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이걸 왜 그렸는데?
타일 무늬가 대체 어쨌다는 걸까. 에셔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법칙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마디로 말해, ‘평면을 공간으로 채우는 방식에서 뭔가 우주의 법칙 같은 게 느껴지는데, 그걸 그리고 싶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하는 ‘우주의 법칙’ 얘기는 놀랍게도 사실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법칙, 그래서 ‘우주의 언어’로 불리는 수학에 테셀레이션(틈새 없이 서로 맞물리는 모양으로 평면을 완전히 덮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분야가 있었던 겁니다. ‘수포자’였던 에셔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지만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에셔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평평한 2차원의 그림이나 화면을 보며 거기서 3차원의 공간을 떠올립니다. 이는 에셔에게 마치 ‘인간이 제한된 감각과 두뇌로 이 우주를 파악하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에셔는 평면을 다양한 모양으로 덮는 작품, 거울에 비친 신비로운 이미지,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절묘한 착시 현상 등을 작품으로 그렸습니다.
에셔는 그제야 자신이 젊은 시절 판화라는 매체에 끌렸던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일반적인 그림은 아무리 잘 그려도 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판화는 모양을 새긴 판만 있으면 얼마든지 찍어내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자신만이 봤던 광경을, 예전부터 에셔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집요함과 끈기
하지만 에셔의 작품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작품이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예술이야. 에셔의 그림에는 감정이 없어. 그건 그냥 눈속임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난에 불과해.” “신기하긴 한데, 아름답진 않아. 이게 과연 예술일까?” 대중과 평론가들은 에셔의 그림을 두고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미술사를 통틀어 에셔와 비슷한 화가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에셔도 대부분의 현대미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화가라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왜 그렸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에셔는 이렇게 푸념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에셔는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에셔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만드는지 아니? 사실 나도 몰라. 하지만 이런 그림을 만들고 보여주는 게 너무나도 재미있고 보람이 있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단 말이야.” 그는 극도로 섬세한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무한’을 작품에 담고 싶었던 그는 끝없이 줄어드는 듯한 모양을 표현하려 했고, 이를 위해 돋보기를 세 개나 겹쳐 쓰고 2mm 크기의 극히 세밀한 모양을 수없이 그려 넣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에셔는 1972년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널리 전하며 살았습니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 친구였던 그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에게 사랑받았습니다. 말년에 돈을 많이 벌게 된 뒤에는 검소하게 살면서 수입의 대부분을 기부했습니다.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말년이었습니다.
에셔가 알려주는 비밀
1964년, 에셔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기차 안에서 저는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높이에 떠 있는 여러 모양의 구름에 압도당한 거지요.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감과 입체감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 네덜란드처럼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도 이런 사실을 갑자기 깨달을 수 있더군요. 사람으로 붐비는 곳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갑자기 시간을 초월해 무한한 우주를 볼 수 있는 거지요.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혹시….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이런 에셔의 작품에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나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비춰 봤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의견을 내놨습니다. “당신의 작품은 수학 이론을 담고 있다” “아니다. 사람이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의학적 방식을 담은 것이다” “작품에서 심오한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윤회 사상을 담은 거 아닐까?”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에셔는 이렇게 답하곤 했습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는 건 기쁘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수학 이론이나 철학을 작품에 담지 않았어요. 제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을 최대한 정확하게 그렸을 뿐이지요.”
‘어디서 이 그림의 이상한 부분이 시작된 걸까? 어느 부분에서 시각이 왜곡된 걸까?’ 이렇게 생각하며 에셔의 작품 속 신비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마치 추리 소설을 보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단서를 잡고 나면, 처음에는 이상하고 혼란스럽게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논리적이고 잘 짜인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어려운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에셔가 ‘시각’을 통해 스스로 수학적인 그림을 그려낸 것처럼, 우주의 법칙에 접근하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는 점. 그만큼 뭔가를 ‘잘 본다’는 것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 그렇게 시각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인간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기적 같은 능력이라는 사실들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The Magic Mirror of Escher (Bruno Ernst 지음), Escher (Bool, Kist, Loucher, Wierda 지음), Escher on Escher(Vermeulen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6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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