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연출가가 공연할 때마다 관객 눈치보면서 내용을 바꾸는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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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승연의 뮤지컬 인물 열전
연남장 캬바레 -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모두가 연출가가 되는 마법
연남장 캬바레 -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모두가 연출가가 되는 마법
모든 공연은 근본적으로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단 하나의 사건’으로 수행된다. 배우들의 연기(의 합), 객석의 반응, 무대 위와 뒤를 흐르는 에너지 등이 그날 그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공연의 본질은 무엇보다 ‘현장성’에 있다. 관객은 객석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날 그 공연의 모든 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만든다.
하지만 현장성이 곧 즉흥성은 아니다. 즉흥성이 공연의 현장감을 증폭시킬 수는 있어도 공연 전체가 즉흥적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상업극은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2017년부터 시작되어 이번 연남장 캬바레로 돌아온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일명 <오첨뮤>는 근본적으로 ‘즉흥성’에 기대는 공연으로 주목된다.
좀 급진적으로 말해 <오첨뮤>는 공연의 본질에 순수하게 기대는 아이러니한 상업극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은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시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후 그대로 폐기된다. 때문에 <오첨뮤>는 공연의 분위기를 포함하여 그날 그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텍스트를 생산하는 차원에서 유일무이함을 지향한다. 원론적으로 재가공, 재사용이 불가능한 공연이라는 이야기다.
인물로 존재하는 연출가
사실 이런 스타일의 공연에서 ‘인물’을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오첨뮤>는 인물과 주제보다 배우가 극적인 순간을 펼치는 퍼포먼스가 핵심이며, 퍼포먼스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떨어트리지 않도록 무대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관객이다. 공연은 관객이 던지는 두 개의 제시어를 품으며 무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관객이 붙인 제목을 통해 그날 공연의 의미를 발산한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는 <오첨뮤> 전체에 흐르는 공연성을 유연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오첨뮤>는 ‘연남장 캬바레’라는 콘셉트와 만나 자유로운 형식을 더 증폭시킨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연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오첨뮤>를 자세히 관찰하면 주목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연출가’라는 존재다. <오첨뮤>의 출연진은 5명의 배우와 1명의 연출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출가’를 실제 연출가로 캐스팅하여 공연의 묘미를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2024 연남장 캬바레 공연에는 초연부터 참여했던 연출가 김태형과 재연부터 합류했던 연출가 장우성(장우성은 극작과 연출을 겸하는 작업자다)이 더블 캐스팅되어 있다. 그런데 연출가가 인물이라고?
<오첨뮤> 연출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마치 창극의 도창처럼 극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흐름이 느슨해지고 배우들의 아이디어에 힘이 빠진 것처럼 보일 때 연출가는 서사의 공백을 채워 빠르게 진행시키거나 아예 서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름을 바꿔 공연의 긴장감을 높이고 흥미를 고조시키는 재치도 필요하다.
공연을 시작하고 마칠 때 관객, 배우 그리고 스태프 모두에게 신호를 주는 것도 연출가의 몫이다. 관객에게 제시어와 제목 선정 미션을 준다든지(필자가 공연을 본 날의 제시어는 좀비와 마늘, 제목은 ‘좀비지만 질문은 하고 싶어’였다), 특정 배우가 특정 역할을 연기하도록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다든지, 공연의 의미를 정리함으로써 시작과 끝을 만드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은 <오첨뮤> 연출가의 연극적 수행이다. 보통의 공연에서 연출가는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임무를 다하며 공연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으로 존재하지만, <오첨뮤>의 연출가는 공연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존재한다. 연출가는 자신만의 공연 전략과 본연의 캐릭터를 더해 ‘연출가라는 인물’을 완성한다.
모두가 연출가로 존재하기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첨뮤>의 묘미는 바로 여기, 공연에 참여하는 구성원 전체가 연출가의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에도 있다. 배우들은 극의 흐름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고리를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이것을 ‘예스 앤드(Yes and)’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음 차례의 배우가 장면화할 수 있는 극적 모멘트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배우들의 역할 수행은 따라서 자신의 장면이 다음 흐름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현재 흐름을 재치 있게 포착하여 장면을 구성하는 것에 놓인다. ‘그다음’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내는 배우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출가의 눈이다. 다음 장면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출가와 논의하는 무대 아래 배우들을 보는 것은 공연의 백미다. 필자가 본 2024년 7월 12일의 <오첨뮤>는 ‘좀비지만 질문은 하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정리됐다.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무한동력처럼 노동력을 생성하려고 했던 미래 프로젝트는 생각을 되살리는 바이러스인 마늘과 그보다 더 강력한 사랑 바이러스 때문에 실패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우연히 좀비와 마늘로부터 출발했지만 결론은 생각과 사랑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보편성까지 갖췄다.
이는 배우 외에도 즉흥적으로 음악을 생성하던 연주자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한 관객의 재치가 결합된 것이었다. <오첨뮤>는 이렇게 모두가 연출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공연으로 계속 진화 중이다. 한국 뮤지컬의 다양화를 위해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를.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좀 급진적으로 말해 <오첨뮤>는 공연의 본질에 순수하게 기대는 아이러니한 상업극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은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시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후 그대로 폐기된다. 때문에 <오첨뮤>는 공연의 분위기를 포함하여 그날 그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텍스트를 생산하는 차원에서 유일무이함을 지향한다. 원론적으로 재가공, 재사용이 불가능한 공연이라는 이야기다.
인물로 존재하는 연출가
사실 이런 스타일의 공연에서 ‘인물’을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오첨뮤>는 인물과 주제보다 배우가 극적인 순간을 펼치는 퍼포먼스가 핵심이며, 퍼포먼스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떨어트리지 않도록 무대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관객이다. 공연은 관객이 던지는 두 개의 제시어를 품으며 무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관객이 붙인 제목을 통해 그날 공연의 의미를 발산한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는 <오첨뮤> 전체에 흐르는 공연성을 유연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오첨뮤>는 ‘연남장 캬바레’라는 콘셉트와 만나 자유로운 형식을 더 증폭시킨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연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오첨뮤>를 자세히 관찰하면 주목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연출가’라는 존재다. <오첨뮤>의 출연진은 5명의 배우와 1명의 연출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출가’를 실제 연출가로 캐스팅하여 공연의 묘미를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2024 연남장 캬바레 공연에는 초연부터 참여했던 연출가 김태형과 재연부터 합류했던 연출가 장우성(장우성은 극작과 연출을 겸하는 작업자다)이 더블 캐스팅되어 있다. 그런데 연출가가 인물이라고?
<오첨뮤> 연출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마치 창극의 도창처럼 극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흐름이 느슨해지고 배우들의 아이디어에 힘이 빠진 것처럼 보일 때 연출가는 서사의 공백을 채워 빠르게 진행시키거나 아예 서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름을 바꿔 공연의 긴장감을 높이고 흥미를 고조시키는 재치도 필요하다.
공연을 시작하고 마칠 때 관객, 배우 그리고 스태프 모두에게 신호를 주는 것도 연출가의 몫이다. 관객에게 제시어와 제목 선정 미션을 준다든지(필자가 공연을 본 날의 제시어는 좀비와 마늘, 제목은 ‘좀비지만 질문은 하고 싶어’였다), 특정 배우가 특정 역할을 연기하도록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다든지, 공연의 의미를 정리함으로써 시작과 끝을 만드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은 <오첨뮤> 연출가의 연극적 수행이다. 보통의 공연에서 연출가는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임무를 다하며 공연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으로 존재하지만, <오첨뮤>의 연출가는 공연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존재한다. 연출가는 자신만의 공연 전략과 본연의 캐릭터를 더해 ‘연출가라는 인물’을 완성한다.
모두가 연출가로 존재하기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첨뮤>의 묘미는 바로 여기, 공연에 참여하는 구성원 전체가 연출가의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에도 있다. 배우들은 극의 흐름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고리를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이것을 ‘예스 앤드(Yes and)’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음 차례의 배우가 장면화할 수 있는 극적 모멘트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배우들의 역할 수행은 따라서 자신의 장면이 다음 흐름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현재 흐름을 재치 있게 포착하여 장면을 구성하는 것에 놓인다. ‘그다음’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내는 배우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출가의 눈이다. 다음 장면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출가와 논의하는 무대 아래 배우들을 보는 것은 공연의 백미다. 필자가 본 2024년 7월 12일의 <오첨뮤>는 ‘좀비지만 질문은 하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정리됐다.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무한동력처럼 노동력을 생성하려고 했던 미래 프로젝트는 생각을 되살리는 바이러스인 마늘과 그보다 더 강력한 사랑 바이러스 때문에 실패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우연히 좀비와 마늘로부터 출발했지만 결론은 생각과 사랑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보편성까지 갖췄다.
이는 배우 외에도 즉흥적으로 음악을 생성하던 연주자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한 관객의 재치가 결합된 것이었다. <오첨뮤>는 이렇게 모두가 연출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공연으로 계속 진화 중이다. 한국 뮤지컬의 다양화를 위해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를.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