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도 깜짝 놀랄 듯"…5680억 쏟고 성수기에 '텅텅' [혈세 누수 탐지기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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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2000억원 들인 안동문화관광단지
성수기에 텅텅 빈 모습…'방방이'만 줄서
이용객 저조에 만성 적자…체질 개선 절실
성수기에 텅텅 빈 모습…'방방이'만 줄서
이용객 저조에 만성 적자…체질 개선 절실

"생각보단 괜찮지만 그건 좀…"
안동문화관광단지 내 유교랜드에서 만난 40대 최모씨는 단지에 들어간 혈세 액수를 듣더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강공원을 제외한 여의도 절반 정도 수준인 1.6㎢에 달하는 이 부지에 2002년부터 내년까지 총사업비 5680억원이 들어갑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지방비 1522억원, 자체 1110억원이 들어가 총 2600억원이 훌쩍 넘는 세금이 이미 투입됐습니다. 그중 약 500억원이 투입돼 핵심 사업으로 여겨지는 안동 유교랜드는 최근 매년 수십억 원의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20년간 '세금 먹는 하마' 오명을 쓴 안동문화관광단지. 근황이 알려진 지 오래입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지난달 30일 서울서 왕복 500㎞를 질주해 이곳을 찾아 근황을 살펴봤습니다.
방학 성수기인데

어렵게 도착한 안동문화관광단지는 내년이 완공 예정이지만, '허허벌판'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입구를 지나고 한참을 가서야 큰 풀밭 너머로 이곳의 가장 핵심 랜드마크인 유교랜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도로 옆 물레방아, 유교랜드 앞 분수대 등 수요 없는 조경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지는 넓고, 관리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유지보수에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안동시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서 조회한 결과, 지금까지 이곳의 각종 물품·공사·용역 계약금액만 50억원을 넘었습니다. '절제미'를 강조한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님이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것 같습니다.
겨우 찾은 유교랜드는 유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랍니다. 지하 2층, 층고가 높은 지상 3층 건물에 들어간 공사금액은 총 430억원. 원래 입장료는 9000원이지만, 행사 기간 중이라 2000원을 할인받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혈누탐팀이 이곳을 찾은 날은 주중이긴 했지만, 아이들 방학인데다 휴가 성수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한산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방학이라 그나마 사람이 있는 편"이라면서 "주중에는 하루 400명, 주말에는 하루 1000명 정도 방문한다"고 밝혔습니다. 개관 초 하루 40명이 온 때와 비교하면 큰 도약이지만, 여전히 적자폭을 메우기에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처럼 "예상외로 괜찮다"는 긍정적인 후기는 온라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선 보지 못했지만, 커플끼리 왔다는 후기도 간혹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색안경을 쓰고 간 혈누탐팀도 생각보다 재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줄 서는 '핫플'은



스마트폰에서 증강현실(AR) 혹은 가상 모드로 유교랜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앱도 출시해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02년에는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이 산학협력단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유교랜드를 메타버스화하는 데 국비 25억원을 포함해 예산 50억원을 들였답니다.

앞은 풀밭, 옆은 꽃밭
유교랜드를 나온 후 단지 내를 한 바퀴 둘러보니 사실상 '유령관광단지'에 가까웠습니다. 동식물원인 주토피움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스파랜드'도 들여올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됐다고 합니다. 유교랜드 앞 부지는 풀밭, 옆 부지는 꽃밭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풀밭은 겨울에는 '눈썰매 페스티벌' 공간으로 사용될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산책로나 작은 공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다.상황이 이렇게 돼서일까요. 민간자본사업은 당초 2984억원 예정이었으나 702억원에 그치고 있습니다. 민자로 들어선 호텔이 두 곳이 있었지만,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인근 카페나 베이커리가 사람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유령관광단지' 탈피하려면

많은 시민들은 '이름이 문제'라는 지적도 해왔습니다. 30대 여성 하모씨는 "이름만 바꿔도 반감도 좀 덜할 것 같다. 실제 와보면 시원하고 아이들이랑 즐길 거리가 꽤 있는데 '유교랜드' 하면 막 오고 싶어지는 느낌은 안 주지 않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같은 후기가 많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안동과 유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이름 자체가 오히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선 바이럴 효과를 누리기에 차별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시장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게 한 담당자의 설명입니다.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키즈카페 같은 거주 인근 시설들이 너무 잘 발달하다 보니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유사 시설이 인기를 끌기가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며 "콘텐츠를 수시로 바꿔야 유인물이 생기는데, 그러면 예산이 발생하고 입장료를 올려야 하는 문제도 같이 생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다만 관계자들은 유교랜드가 휴관 전 월 4000~6000명 수준이던 방문객이 재개관 후 지난해 12월 1만4119명으로 급상승하면서 기대감도 생기고 있답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몰려들게 할 수 있는 ▲콘텐츠 개선 ▲지역 연계 ▲SNS 홍보 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유교랜드 맞은편에 위치한 안동레이크 골프클럽 이용객 수가 점진적으로 올라 2019년 이후 내내 유교랜드를 앞서며 9만명 안팎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위치 등 다른 문제가 아니라 유인물의 부족이라는 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출산으로 지방에서 이러한 에듀테인먼트 공간을 찾는 일은 앞으로 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관광지를 찾을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며 "인근 관광지나 교육청과의 연계, SNS 공모전 등 바이럴 효과를 통해 유입 인구를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