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괴롭힘방지법 5주년…'을질' 부작용도 막아야
“직장 상사가 1주일가량 ‘못 본 체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사례가 있는데 괴롭힘 여부를 두고 1, 2심 재판부 판단이 엇갈렸습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17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현행 판단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며 이런 사례를 소개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괴롭힘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등 성과를 냈지만, 손봐야 할 부분도 생기고 있다는 취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76조 2항과 3항에 규정된 사항으로 직장 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직원을 폭행하고 엽기적으로 괴롭힌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건을 계기로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했다.

개정안이 시행된 후 기업에서 상사의 ‘갑질’ 행태가 개선되고 수평적 조직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괴롭힘 신고 남용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올해 발표한 ‘2023년 직장인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중 ‘괴롭힘 신고를 해봤다’는 근로자 비중이 3.3%로 조사됐다. 그런데 ‘허위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1.6%), ‘허위 신고를 당했다’(1.4%)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괴롭힘 신고 못지않게 허위 신고도 많다는 의미다.

인사 담당자들은 괴롭힘 금지법이 “순기능 못지않게 부작용이 많다”고 토로한다. 괴롭힘 신고 이후 피해를 본 신고자에 대한 인사 조처가 철회되거나 부서장이 교체되는 등 사실상 ‘인사 민원’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괴롭힘 조사가 신고자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자 사건 조사를 담당한 인사부 직원을 괴롭힘으로 다시 신고하는 사례가 회자되기도 했다. 본인의 비위를 덮기 위해 신고하는 황당한 일도 있다.

전문가들은 법률상 모호한 괴롭힘 ‘정의 규정’을 명확히 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직장 괴롭힘의 요건은 ‘직장 내 우위를 이용해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돼 있다.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는 선진국들은 오·남용을 방지하는 규정을 둔다. 프랑스는 괴롭힘을 ‘반복적인 정신적 괴롭힘’이라고 정의한다. 일회성 조치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네덜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캐나다 등도 지속성, 반복성 등 요건이 있다.

한국도 최근 법원 판례를 통해 이런 ‘지속성’과 ‘반복성’ 등 요건을 따지고 있지만, 법 조항이 모호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직장 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억울한 사람을 만들게 놔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