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사진가] 20세기 최고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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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사진)가 남긴 말이다. 그의 70주기를 기념한 사진전이 지난 13일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렸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 독립전쟁, 베트남전쟁 등 다섯 곳의 전장을 누볐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는 기자정신을 뜻하는 ‘카파이즘’이 그의 이름에서 비롯했다. 1955년부터 매년 최고의 보도사진엔 ‘로버트카파상’의 영예가 주어지고 있다. 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해인 1913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고향 헝가리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자신의 출신을 감추기 위해 본명 엔드레 프리드먼 대신 로버트 카파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활동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를 촬영한 사진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사진작가인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 등과 함께 보도사진 통신사 매그넘을 설립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사진)가 남긴 말이다. 그의 70주기를 기념한 사진전이 지난 13일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렸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 독립전쟁, 베트남전쟁 등 다섯 곳의 전장을 누볐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는 기자정신을 뜻하는 ‘카파이즘’이 그의 이름에서 비롯했다. 1955년부터 매년 최고의 보도사진엔 ‘로버트카파상’의 영예가 주어지고 있다. 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해인 1913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고향 헝가리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자신의 출신을 감추기 위해 본명 엔드레 프리드먼 대신 로버트 카파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활동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를 촬영한 사진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사진작가인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 등과 함께 보도사진 통신사 매그넘을 설립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