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로펌에서 노동 사안을 주로 다루는 직업 특성상 고객사 직원을 상대로 매년 상당한 횟수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한다. 강의를 하려고 직원들 앞에 서면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눈빛을 느낄 수 있다. 하나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지루한 법률 얘기 대신 재미있는 얘기 좀 해달라. 뭐 없느냐’는 호기심의 눈빛이고, 또 하나는 ‘들으라고 하니 앉아는 있는데, 나와는 상관도 없는 일에 왜 시간을 뺏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경계심의 눈빛이다. 고객사의 직장 내 성희롱 사안을 조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때 만나는 피신고인들이 가장 먼저 어필하는 점은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럼 ‘원래 그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직장 내 성희롱을 윤리의식의 부재나 본능적 욕구의 미성숙한 발현 또는 일부 오피스 빌런의 비위행위라고만 단정하면, 대부분 사람은 직장 내 성희롱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드라마에서 많이 그려지는 정형적인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가 음흉한 눈빛을 지닌 마초적인 임원급 중년 남성이라는 점도 이런 선 긋기에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인정된 사안을 가만히 살펴보면 위와 같은 도덕적 일탈보다는 행위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과신 또는 남용이 관찰되는 사례가 많다. ‘너보다 내가 잘났다’ ‘나 정도면 이 정도는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감히 나를 신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의식들 말이다.

최근 법원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한 사안을 한번 보자. 한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 부서장 A는 20대 중반의 신입 미혼 여직원 B가 거주하는 지역을 듣고, B보다 20세 연상인 남성 직원 C를 언급하며 “C도 거기에 사는데, 둘이 잘 맞겠네”라며 두 사람의 교제를 권유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 후 B가 치킨을 좋아한다고 하자 “C도 치킨 좋아하는데, 둘이 잘 맞겠네”라고 다시 강조했다. 이에 B가 “저 이제 치킨 안 좋아하는 거 같다”고 완곡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A는 한술 더 떠서 “그 친구 돈 많아. 그래도 안 돼?”라며 다시 교제를 강권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에 대해 1심과 항소심 모두 A의 발언을 성희롱이라고 보고, B에 대한 A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A와 B의 대화가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B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돈이 많은 남성은 나이·성격·환경·외모 등과 관계없이 훨씬 젊은 여성과 교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점이 그 근거였다. A 입장에서는 부서장인 내가 노총각 부하 직원 아끼는 마음에서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B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B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A가 이른바 ‘농담’을 계속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내가 부서장인데, 이 정도 농담은 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직장 내 성희롱은 원래부터 비윤리적, 비도덕적 가치관을 지닌 일부의 일탈이라기보다는 직급이든, 나이든, 재력이든, 성별이든 상대방에게 어떤 내용으로든지 우월함을 가진 사람이 그 우월함을 과신하고 남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직장 내 누구도 성희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직장 구성원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직장 내에서 ‘내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 바로 그것이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의 출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