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사의 큰 별이 지다… '대중 영화의 교황' 로저 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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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로저 코먼 9일 별세… 향년 98세
B급 영화 산업과 장르,
그 안에서 배태된 영화와 작법
그 모두를 대표하는 아이콘
그가 만든 수많은 영화들과
그가 배출한 감독들의 영화들과
함께 자라 온 현세대에게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큰 부재이자,
거대한 한 챕터의 폐막
B급 영화 산업과 장르,
그 안에서 배태된 영화와 작법
그 모두를 대표하는 아이콘
그가 만든 수많은 영화들과
그가 배출한 감독들의 영화들과
함께 자라 온 현세대에게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큰 부재이자,
거대한 한 챕터의 폐막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코먼은 스크립트를 쓰며 본격적인 영화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쓴 일련의 스크립트들이 영화화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 그는 그의 첫 장편이자 웨스턴 <파이브 건스 웨스트>를 직접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코먼은 커리어의 시작부터 주로 10대 관객들과 드라이브인을 전전하는 마이너 영화 관객들을 겨냥하는 이른바 ‘B급 영화’에 주력했다. 그가 커리어를 시작한 1950년대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전성기가 끝나고 새로운 대중 매체인 텔레비전과 니체 영화 시장인 그라인드 하우스, 드라이브인, 동시 상영관 등이 성행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미국 영화사에서 로저 코먼은 제작하고 연출했던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가 트레이닝한 수많은 작가, 감독들 (지금은 거장이 된)로도 큰 의의를 갖는다.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당시 코먼의 어시스턴트로, 코먼이 연출한 바이커 영화 <와일드 엔젤스>를 포함한 몇몇 작품의 조연출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코먼이 1970년에 창립한 독립영화 제작사 '뉴 월드 픽쳐스'에서는 마틴 스콜세이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조나단 드미를 포함한 아메리칸 시네마의 간판 감독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코먼의 수많은 영화적 업적 중에서도 그가 숨어 있는 재능들을 배출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코먼의 뉴 월드 픽쳐스는 (중요성에 비해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여성 감독의 활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영화 산업, 특히 엑스플로이테이션과 저예산 장르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여성 감독들, 혹은 잠재력을 보였던 여성 신인 감독에게 연출 기회를 주는 산실이기도 했다. 바바라 피터스와 스테파니 로스맨은 로저 코먼이 제작한 프로젝트의 연출로 시작해 영화 산업으로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러니한 코먼의 또 다른 활약으로는 외국 아트하우스 영화를 배급하는 일이었다. 1970년대 메이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1970년대에 들어 (블록버스터 제작의 집중으로 인해) 외국 작품들의 배급을 외면하자 코먼의 뉴 월드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나 프랑소와 트뤼포 같은 해외 거장의 작품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피터 위어 (< The Cars That Ate Paris >), 페데리코 펠리니 (< Amacord >), 조셉 로지 (< he Romantic Englishwoman >), 폴커 슐렌도르프 (<양철북>), 구로사와 아키라 (<데르수 우잘라>)와 같은 해외 시네 아스트들과 그들의 대표작들은 코먼의 뉴 월드가 아니었다면 미국 시장에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뉴 월드가 10년 기준 제작했던 영화들보다 배급했던 영화들이 더 많은 아카데미상 (외국어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재미있는 기록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영화 관객들과 시네필들이 코먼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시사하는 사실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