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 막을 내리는 21대 국회와 함께 지난 4년간 제출된 입법안도 모두 폐기된다. 사라지는 법안 중에는 원자력 발전소 가동에 필수적인 고준위방폐장 특별법, 인공지능(AI)산업 지원을 위한 AI기본법,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 등 경제 발전에 긴요한 법안이 수두룩하다. 대부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크게 반대하지 않는 법안들이다. ‘비쟁점 법안’임에도 폐기 운명을 맞은 경제법안 논의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한 명 반대해서, 시기 놓쳐서…사라지는 21대 경제법안
우선 당의 입장과 관계없이 의원 일부가 반대하는 법안들이 있다. 고준위방폐장 특별법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김성환 민주당 의원이 정부 원안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저장용량을 제한해 궁극적으로 탈원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생각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이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김 의원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만장일치 의결을 원칙으로 하는 산자위 법안소위에 김 의원이 속해 있는 데다, 정책위원회 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이라 동료 의원들도 설득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제사법위에서는 법률 플랫폼 활성화와 관련된 ‘로톡법’이 야당 간사인 소병철 민주당 의원의 반대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로톡법을 ‘중점 처리 법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소 의원은 “법무부도 법안 상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역시 민주당이 중점 처리 법안으로 지정한 비대면 진료 관련 법도 21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복지위에 소속된 약사 출신 의원들이 법안 처리를 막아서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AI산업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AI기본법은 지난해 2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위까지 통과하고도 전체회의에 계류돼 있다가 이달 말 사라지게 됐다. 챗GPT 등 생성형 AI 열풍 이전에 법안이 만들어져 최신 산업 트렌드를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K칩스법도 민주당은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올 2월이었던 법안 상정 시점을 문제 삼고 있다. 기획재정위 야당 간사인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으로 세수에 영향을 주는 만큼 가을 정기국회에서 정부 세제개편안과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야의 법안 처리 의지가 전례없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졸속 법안 처리’ 비판이 나올 정도로 임기 종료를 앞둔 본회의에서 수백 건씩 법안을 처리했던 과거와 달리 21대 국회에서는 법안 처리 건수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법안을 처리하는 14개 상임위 중 총선 이후 회의를 연 곳은 법사위와 행정안전위 등 6개에 불과하다. 기재위와 복지위 등은 상임위 일정 자체를 잡지 않아 21대 임기 내에 추가 법안 심의 역시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의석수에서 민주당에 밀리는 여당과 정부 국정운영에 힘을 보태기 싫은 야당이 서로 회의 개최를 피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 지도부의 의지가 있다면 일부 의원의 반대는 얼마든지 잠재우고 법안 처리에 나설 수 있다”며 “연초에 종합부동산세제 강화법을 처리한 문재인 정부 사례를 볼 때 K칩스법을 가을에 논의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도 핑계”라고 지적했다.

노경목/박주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