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 9일 오전 11시 57분

앞으로 기업공개(IPO) 때 기업 실사를 부실하게 한 증권사는 제재를 받는다. 상장 실패 시 주관사가 수수료를 받지 못하던 관행도 사라진다. 수수료를 받기 위해 부실기업의 상장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선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과도한 공모가 산정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IPO 실패해도 수수료 받는다

"뻥튀기 상장 안돼"…'실사 부실' 증권사 제재
9일 금융감독원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IPO 주관업무 제도개선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뻥튀기 상장’ 논란을 불러온 파두 사태로 IPO시장 신뢰가 하락하자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한 대책이다.

금감원은 형식적인 기업 실사를 방지하기 위해 주관사의 기업 실사 항목과 절차 등 준수사항을 규정하고 실사 책임자가 이를 점검해 최종 승인하게 할 방침이다. 규정에 따라 실사 업무를 하지 않는 증권사는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해 제재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공모가 산정과 관련해선 주관사별로 내부 기준을 자체적으로 세우도록 했다. 금융투자협회가 ‘IPO 공모가격 결정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 배포할 예정이다. 만약 내부 기준을 벗어난 공모가 산정 방식을 적용할 땐 주관사 내부 조직의 별도 승인을 받고 그 이유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

증권신고서에는 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에서 발견된 투자위험 등을 투자자가 알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공시 서식 표준화 등을 통해 한눈에 증권신고서 내용을 파악하도록 하는 방안도 담겼다. IPO 주관업무 관련 내부통제 기준에 들어갈 필수 항목도 규정에 구체화하기로 했다.

IPO 단계별로 주관사가 수수료를 받는 방안도 도입한다. 상장이 무산되더라도 계약 해지 시점까지의 업무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기업이 상장을 중단하면 주관사는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해 무리하게 상장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는 2~3분기에 금융투자업 규정 및 인수업무 규정 등을 개정할 계획이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주관사는 충분한 자율권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되 시장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경우 엄정히 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무분별한 상장 도전 ‘제동’

업계에서는 단계별 IPO 수수료 수취 의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상장 기업이 이유 없이 주관사를 교체하는 사례가 줄어들고 주관사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어서다. 그동안 저가 수수료 경쟁을 벌이며 IPO 주관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던 투자은행(IB)업계의 영업 행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상장 적격성이 낮은 회사여도 증권사들이 주관사 자리를 따내기 위해 높은 기업가치를 받게 해주겠다며 영업하고 있다”며 “선취 수수료를 받으면 공모 과정에서 주관사의 영향력도 커지고 부실 실사에 따른 제재를 의식해 객관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우량 기업의 상장 도전이 줄어드는 만큼 공모주 투자 리스크가 다소 낮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증권가에선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할 공모가 산정 가이드라인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구속력이 없고 자체적 기준에 따른다면 ‘공모가 거품’ 논란과 ‘뻥튀기 상장’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