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개발한 36GB HBM3E 12H D램.  한경DB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개발한 36GB HBM3E 12H D램. 한경DB
1년 이상 ‘불황’을 겪었던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살아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들이 올 1분기 ‘깜짝 실적’을 기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의 1분기 반도체 영업이익은 1조91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했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2조8860억원으로 컨센서스(1조4741억원)의 두 배 이상 실적을 올렸다.

SSD 전문 솔리다임에 주문 쇄도

반도체 기업 깜짝 흑자의 배경으로 ‘미운 오리’로 불리던 낸드플래시 업황의 반등이 꼽힌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특성이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다양한 모바일 기기와 PC, 서버 등 전자기기에 데이터 저장장치로 사용된다.

HBM·SSD 봄바람에 메모리반도체 '활짝'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사업은 7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1분기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평균판매가격(ASP)은 전 분기 대비 30% 이상 올랐다. 2022~2023년 조(兆) 단위 분기 손실을 낸 자회사 낸드플래시 전문 업체 솔리다임의 실적도 정상화됐다.

솔리다임의 주력 제품은 기업용 SSD다. 이 제품은 낸드플래시를 여러 개 묶어 만드는 데이터 저장장치다. 서버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고 읽고 처리하는 데 활용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버의 데이터 저장장치로 주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썼다. 자기력이 있는 디스크를 활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기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최근 서버 기업들이 HDD를 기업용 SSD로 교체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SSD는 낸드플래시를 활용하기 때문에 HDD 대비 크기가 작고 전력을 적게 쓰면서 용량을 비교적 자유롭게 키울 수 있어서다. 최근 AI 서버용 대용량 SSD를 원하는 빅테크들이 줄을 서서 낸드플래시 기업의 SSD를 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도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흑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역시 주문이 쇄도하는 SSD 시장 장악에 힘을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2분기에 초고용량 64TB SSD 개발을 마칠 계획이다. 올해 서버용 SSD 출하량도 지난해 대비 1.8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중 초대용량 서버용 쿼드러플레벨셀(QLC) 낸드플래시 기반 SSD의 올 하반기 판매량은 상반기 대비 세 배 수준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트레이닝(학습)과 인퍼런스(추론) 두 분야 모두에서 SSD 공급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HBM 출하량 3배 늘린다

메모리 업황 반등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빼놓고선 이야기할 수 없다. AI 시대 고용량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D램의 수요가 커지면서 D램을 쌓아 올린 HBM이 ‘필수재’로 꼽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 공급량을 비트(bit) 기준으로 작년보다 세 배 이상 늘리고, 내년에 또다시 두 배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달 양산에 들어간 5세대 HBM인 ‘HBM3E’ 8단 제품은 이르면 올 2분기부터 매출에 반영된다. HBM3E 12단 제품도 2분기에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고객사는 미국의 AI 가속기(데이터 학습·추론에 특화된 반도체 패키지) 전문업체 AMD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HBM3E 판매량 비중이 전체 HBM의 3분의 2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버용 제품인 5세대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32Gb(기가비트) DDR5 기반 128기가바이트(GB) 제품도 이번 분기 양산을 시작해 고객사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HBM3E 12단 제품에 대해 “이달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하고 3분기 양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내년 초로 잡은 HBM3E 양산 일정을 올해로 앞당긴 것이다. 고객사는 HBM 시장의 큰손 엔비디아인 것으로 알려졌다.

6세대 HBM인 ‘HBM4’ 양산 시기도 1년 앞당겨 2025년으로 잡았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CEO)은 “HBM 기술 경쟁력을 갑자기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HBM 공급 과잉’ 우려에 대해선 강한 어조로 일축했다. 곽 사장은 “기술적 우위와 AI용 반도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올해 HBM 생산 물량이 솔드아웃(완판)됐다”며 “HBM은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투자를 집행해 과잉 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개화 단계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전체 메모리 시장의 약 5%(금액 기준)를 차지한 HBM과 고용량 D램 모듈 등 AI 메모리 비중은 2028년 61%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HBM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연평균 60%에 달하는 고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