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한 택배 지·간선 기사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로 인정해야 한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하나의 사업주에 노무를 꾸준히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했다면 계약 형태와 상관없이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단독10부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B사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택배 물품을 경남 양산에서 대전까지 운송하는 업무를 했다. 그러다가 작년 3월부터 묵시적으로 노선 화물 운송계약을 맺고 회사가 정한 노선과 일정에 따라 화물을 배송하는 일을 했다. 그는 3월 23일 대전 대덕구 허브터미널의 한 도크에서 후진하던 화물차량에 치여 요추 골절, 소장 손상 등을 진단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법상 특수고용직에 해당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승인을 거절했다. 이에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는 근로자와 유사하게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꾸준히 제공하고, 이를 위해 타인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전체 소득의 절반을 초과한 소득을 B사로부터 얻었고, 작년 3월부터는 수시로 화물운송을 할 때와 달리 임의로 쉴 수 없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월 23~24일 화물운송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서면으로 1년 이상’ 화물 운송계약을 체결한 택배 지·간선 기사만 특수고용직으로 본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자의 선택에 따라 업무상 재해에서 종사자를 보호한다는 법 취지가 무시될 수 있다”며 “(해당 고시는) 상위 법령에 배치되고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