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지혜 모은 책·일기 속 애틋한 마음…우리의 '아버지'
정약용 '하피첩' 등 150여 점 한자리에…시민 100여 명 사연 눈길 #1.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1810년 부인 홍씨가 보낸 노을 빛깔의 낡은 치마를 잘라 글을 적었다.
'몸과 마음을 닦으며 근검하게 살아라', '학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을 대비하라'…. 전라도 강진의 유배지에 있던 그가 두 아들에게 남기고픈 말은 너무나도 많았다.
바래고 해진 치맛감에 남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2. 2000년대 초반, 한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에 모자를 챙겼다.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가 주인공인 날, 아버지는 항암 치료로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쓴 채 새 신부의 손을 잡았다.
시간이 지난 뒤 딸은 "여러 날 힘겹게 걷는 연습을 하셨던 아빠가 생각납니다"고 떠올렸다.
'가정의 달'을 맞아 아버지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170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식들을 묵묵히 사랑한 144명의 아버지 이야기다.
국립민속박물관이 30일부터 선보이는 특별전 '아버지'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옛 유물과 시민들의 사연이 어우러진 자리다.
추억 속 물건, 사진 등 150여 점을 모았다.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은 조선시대 아버지의 속정을 느낄 수 있는 자료다.
유배 당시 쓴 것으로 여겨지는 이 서첩에는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구절을 지어 써주다'는 글귀가 남아 있어 정약용이 직접 짓고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2010년 보물로 지정된 사연도 흥미롭다.
'하피첩'은 다산의 후손이 과거 한국전쟁 때 분실한 것으로 알려져 행방이 묘연했으나, 2006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존재가 다시 드러나 주목받은 바 있다.
다만,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원본은 5월 13일까지 2주 동안만 공개된다.
김교철이라는 인물이 1934년 2월 8일 아들의 돌을 기념해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천 명의 지혜가 전해져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점이 눈에 띈다.
이 밖에도 과거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라는 격려 편지, 1920년대 시집간 딸에게 쓴 편지, 아이의 성장에 맞춰 기록한 육아 일기장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보다는 시민들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시민 100여 명은 영상 인터뷰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고, 다시는 맛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고추장떡, 수제비 등 아버지의 요리를 그리워했다.
인터뷰 초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에 많은 이들이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관련한 추억을 떠오르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시민은 "미국으로 떠날 때 아버지가 전쟁통에 갖고 다니셨던 숟가락을 복제해서 물려주셨다.
그 덕분에 30여년간 잘살고 있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또 다른 시민은 '사랑한다는 말도 아까운 내 아들'이라고 적힌 편지를 공개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해온 아버지가 너무나도 당연해서 무심했는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묵묵한 사랑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7월 15일까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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