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백악관과 뒤집힌 성조기…뉴욕 휘트니 비엔날레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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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
제81회 휘트니 비엔날레
제81회 휘트니 비엔날레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미술제, 한국과의 인연은
지난 3월 20일 개막, 오는 8월 11일까지 열리는 휘트니 비엔날레는 올해로 81회를 맞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미술제입니다. 지난 1932년 시작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미술제로 꼽힙니다. 또 한국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휘트니 비엔날레가 미국을 벗어나 유일하게 열렸던 곳이 바로 1993년 과천입니다. 배경에는 백남준이 있었습니다. 당시 휘트니 비엔날레 관장인 데이비드 로스는 첫 해외 전시로 일본을 점 찍은 상황이었는데, 백남준이 주제인 ‘경계선’(Borderline)에 더 적합한 곳이 한국, 서울이라며 적극 밀어붙였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휘트니 비엔날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습니다. 단 한 번뿐인 외유였습니다.올해 휘트니 비엔날레는 미술관 큐레이터인 크리시 일즈(Chrissie Iles)와 멕 온리(Meg Onli)가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주제인 ‘실제보다 더 나은’은 ‘현존’이라는 개념을 고민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와 공간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점점 더 일상을 파고드는 인공지능, 낙태 문제로 대표되는 개인과 사회의 신체 주도권 다툼, 늘 반쯤 온라인에 접속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유동적 정체성, 21세기에도 이어지는 영토전쟁, 환경문제 등 ‘변곡점’에 달한 우리 현재를 71명의 예술가들이 돌아봅니다.
71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현재, 그 불안한 자화상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미국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첫 손에 꼽히는 건 미국 대법원에서는 여성의 신체 주도권을 인정하는 1973년 연방대법관들이 내린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뒤집힌 케이스입니다. 낙태권 보장이 사생활 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세대별로, 주별로 찬반양론이 불붙은 가운데 일부 주에서는 낙태를 인정하지 않아,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꼭 해야 하는 여성들마저도 수술을 위해 주를 건너 이동하는 황당한 상황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도 주요 이슈입니다. 프로 라이프(pro life·낙태 반대)인 공화당과 프로 초이스(pro choice·여성의 선택권 존중)인 민주당 덕에 세대 간 이슈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카르멘 위난트(Carmen Winant)는 이 같은 급작스런 백래쉬(Backlash·반동)에 조용하고 담담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벽 전체를 낙태 클리닉 의사와 자원봉사자들의 사진 2500여장으로 채운 것이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여성들의 수많은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대신, 현장에서 촬영한 ‘현재’를 가져와 관객에게 펼쳐 놓습니다. 빈칸을 짐작하는 것은 관객의 몫입니다.

인종, 성별, 능력에서 소외된 이들은 그동안 어떻게 그려졌나
비엔날레는 전반적으로 ‘비주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원래 미국 땅의 주인이었으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 네이티브 아메리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이성 중심 사회에서 퀴어, 전쟁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과 억류된 사람들 그리고 능력이 없어 잉여로 취급받는 이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비주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가장자리 끝(fringe)에 위치한 사람들입니다.

2024 휘트니 비엔날레, 우리시대 불협화음을 집합시키다


휘트니 미술관은 그 시작부터 실험적인 동시대 예술을 받아들이고 키우는 플랫폼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구겐하임,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함께 뉴욕의 4대 미술관으로 통하지만, 1931년 설립 당시엔 미술관을 세우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철도왕으로 불린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의 손녀이자 미술가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는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 700여점을 기증하려 했으나, ‘검증되지 않은 젊은 미술가의 작품들’이라는 이유로 기증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에 미술관을 새로 지은 것입니다.
휘트니비엔날레는 이처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로 시작했습니다. 앞선 2년간 발표된 미국 현대미술을 주로 소개했죠. 1937년부터는 매년 개최하다 1973년부터는 다시 비엔날레 형태로 돌아옵니다. 백남준을 비롯해 제니 홀저, 에드워드 호퍼, 마크 브레드포드, 로이 리히텐슈타인, 글렌 리곤, 신디 셔먼 등 3600여명의 작가가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전 세계 미술을 다룬다면, 휘트니는 미국 미술을 통해 세계를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한빛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