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어도어 대표 / 사진=하이브 제공
민희진 어도어 대표 / 사진=하이브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국내 대표 가요 기획사 하이브(352820)가 산하 레이블 어도어 경영진들을 상대로 칼을 빼 들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 등이 본사로부터 독립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이브는 22일 오전 민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 등이 경영권 탈취를 시도해온 정황을 파악해 관련 증거 수집에 나섰다.

하이브 감사팀은 이들을 상대로 회사 전산 자산을 회수하고, 대면 진술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브 관계자는 한경닷컴에 "감사권이 발동된 게 맞다"면서도 구체적인 사안과 관련해서는 함구했다.

한경닷컴 취재 결과 하이브는 민 대표를 비롯해 부대표 A씨, B씨 등을 상대로 ▲경영권 탈취 목적으로 취득한 핵심 정보 유출 ▲부적절 외부 컨설팅 의혹 ▲아티스트 개인정보 유출 ▲인사채용 비위 등의 내용을 담은 감사 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질의서에 따르면 하이브는 어도어가 경영권 탈취 목적으로 취득한 핵심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고, 사업·인사상의 비밀을 외부에 유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외부 컨설팅을 받은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도어 경영진들이 올 초부터 경영권 탈취를 위한 계획을 실행,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해외 투자자문사,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털(VC) 관계자 등에게 매각 구조를 검토받는 과정에서 어도어와 하이브 사이에 체결된 계약정보 등을 임의로 유출했다고도 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데뷔 전 연습생들의 초상·건강 상황 등 아티스트의 개인정보도 외부에 유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티스트 개인 정보는 엔터테인먼트사의 핵심 비밀에 해당하며 사생활 보호 문제와도 엮여 있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는 이러한 내용들을 제보를 통해 파악했으며, 사실관계를 명확히하기 위해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아울러 민 대표의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어도어 이사진을 상대로 주주총회 소집을 요청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진=어도어 제공
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진=어도어 제공
하이브의 전신인 빅히트뮤직은 2019년 민 대표를 영입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이사를 역임한 바 있는 민 대표는 소녀시대·f(x)·레드벨벳 등의 콘셉트를 기획하고 엑소의 심볼 및 세계관을 구현하는 등 감각적인 비주얼 디렉팅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하이브가 상장을 앞두고 민 대표를 영입하면서 업계의 지대한 관심이 쏠렸고, 이들의 시너지에도 관심이 쏠렸다.

하이브는 용산으로 사옥을 옮길 때도 공간 브랜딩을 전적으로 민 대표에 맡겼다. 이 공으로 민 대표는 2020년 5억2700만원의 연봉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국내 주요 4대 엔터테인먼트 중 5억이 넘는 연봉을 받은 여성은 민 대표가 유일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신인 론칭을 준비하면서 하이브와 민 대표는 분리됐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는 위치가 아닌, 독립 레이블인 어도어의 수장이 됐다. 각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한다는 하이브의 운영 철학 '멀티 레이블 체제'에 따라 어도어에서 탄생한 그룹 뉴진스는 철저히 민 대표의 프로듀싱을 통해 완성됐다.

어도어는 하이브 레이블 중에서도 특히 독립성이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민 대표는 하이브 본사가 아닌 오랫동안 호흡한 측근들과 일하고 있다. 뉴진스를 기획하며 이들의 음악 역시 SM엔터테인먼트 재직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김기현(당시 인터내셔널 A&R 출신) BANA 대표에 맡겨왔다.

민 대표 스스로도 '독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언급했던 바다.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쉽게 '하이브 자본'을 외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가 안되는 표현이다. 투자금이 결정돼 투자가 성사된 이후의 실제 세부 레이블 경영 전략은 하이브와 무관한 레이블의 독자 재량이기도 하거니와 난 당시 하이브 외에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제안을 받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내게는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었고, 투자처가 어디든 '창작의 독립', '무간섭'의 조항은 1순위 였을 것이라 사실 꼭 하이브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룹 뉴진스 /사진=어도어 제공
그룹 뉴진스 /사진=어도어 제공
독자 노선을 택한 민 대표의 기획력은 뉴진스 데뷔와 동시에 빛을 발했다. '어텐션', '하입 보이', '디토', 'OMG' 등 발표곡이 모두 히트에 성공하며 K팝 대표 걸그룹으로 부상했다. 동시기에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소성진 쏘스뮤직 대표와 손잡고 르세라핌을 선보여 두 팀은 경쟁 구도에 놓이기도 했다.

'민희진 걸그룹' 뉴진스, '방시혁 걸그룹' 르세라핌이 함께 하이브의 효녀 역할을 했는데 지난해부터 중추 역할이 뉴진스로 크게 기울었다. 어도어는 지난해 매출 1102억, 영업익 335억으로 하이브 레이블 중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뮤직, 세븐틴이 속한 플레디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뉴진스 한 팀만으로 거둔 성과다. 르세라핌이 있는 쏘스뮤직은 매출 611억, 영업익 119억으로 다소 격차가 있었다.

당초 하이브는 어도어 지분을 100% 보유 중이었으나, 지난해 민 대표가 콜옵션(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18%를 보유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나머지 2%는 어도어의 다른 경영진이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도어가 핵심 레이블이 된 상황이기에 이들의 독립은 하이브에겐 치명타가 된다. 이에 하이브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확보된 전산 자산 등을 토대로 필요시 법적 조치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일을 토대로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한 재정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내부 조직이 각 본부로 나뉘어 '따로 또 같이'의 개념이 어느 정도 가능한 반면 여러 기획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레이블을 구성하는 방식의 단점이 드러난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편 어도어 경영진에 대한 감사권이 발동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날 하이브 주가는 출렁였다. 22일 하이브 주가는 전일 대비 1만8000원(7.81%) 하락한 21만2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