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금체불을 당한 근로자에게 사업주 대신 임금을 먼저 돌려주는 ‘대지급금’ 지급 요건을 강화한다. 사업주가 허위로 근로자를 내세워 대지급금을 부정 수급하는 등 악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본지 1월 16일자 A25면 참조

○체불 임금 지급 요건 강화

나랏돈 빼먹는 '가짜 임금체불'에 칼 댄다
18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대지급금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다. 대지급금은 임금체불 근로자에게 정부가 우선 밀린 임금을 대신 지급하고 나중에 사업주에게 해당 임금을 받아내는 제도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1년 ‘간이 대지급금’ 지급 요건이 완화된 뒤 부정 수급 사례가 늘자 제도 개선안이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선안에 따르면 고용노동 관서가 발급하는 체불확인서 발급 기준이 엄격해진다. 현재는 임금체불 사업주와 체불 근로자 간 체불이 있었다는 진술이 일치하면 대지급금 지급에 필요한 체불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런 ‘당사자 진술’ 요건이 사라진다. 신속한 지원을 위해 임금체불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다소 부족해도 당사자 진술에 근거해 대지급금을 주다 보니 부정 수급 사례가 발생했다는 게 고용부 판단이다.

체불 금액, 재직 사실을 증명하는 ‘임금 자료’도 객관적 자료로 한정한다. 그동안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임금 대장, 카카오톡, 교통카드, 사업장 출입 내역 등 체불 임금을 증명하는 약식 자료만 제시해도 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고용보험, 국민·건강보험 등 객관성 있는 자료를 내야 한다.

체불확인서는 체불에 대한 ‘시정 지시’ 이후 발급한다. 확인서 발급 후 임금체불에 대해 시정 지시 등 조치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다. 10인 이상 임금체불 사업장은 사업주에게 재산목록 제출을 요청하고,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 신설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이달 근로감독 집무규정을 개정하면 곧바로 제도 개선안이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별 지급 한도 설정해야

정부가 제도 개편에 나서는 것은 간이 대지급금 지급 요건 완화 후 부정 수급자가 불어나고 있어서다. 지난해 대지급금 총지급액은 6869억원으로 1년 전보다 27.9% 증가했다. 역대 최고 규모다. 지난 3월 고용부 감독 결과 가족, 지인과 같은 허위 근로자를 고용한 것처럼 임금대장 등을 꾸민 다음 체불을 신고해 간이 대지급금을 챙긴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관공서로부터 발급받는 일종의 ‘임금체불 증명서’인 체불확인서 중 간이 대지급금 청구 용도로 발급된 비율은 2021년 46.1%에서 지난해 85.6%로 급등했다. 전체 대지급금 중 간이 대지급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85.5%에서 지난해 94.2%로 상승했다. 한 근로감독관은 “간이 대지급금 지급 요건을 완화한 이후 자신이 내야 할 임금을 대지급금으로 해결하려는 사업주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국가가 대지급금 중 체불 사업주로부터 받아낸 금액의 비율인 ‘회수율’은 간이 대지급금의 경우 16.4%로 도산 대지급금(41.1%)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 이로 인해 대지급금 재원인 ‘임금채권 보장기금’ 적립금은 2022년 6172억원에서 지난해 4670억원으로 줄었다. 한 근로감독관은 “사업주별 대지급금 지급액 한도와 횟수 제한이 없어 이를 악용한 반복 수급이 기승을 부린다”며 “회수율을 높일 담보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