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 팔로워를 보유한 미국 틱톡커 사라 팔미라가 한국 중소기업 화장품 제품 사용 후기를 올린 모습. /출처=사라 팔미라 틱톡 캡처
90만 팔로워를 보유한 미국 틱톡커 사라 팔미라가 한국 중소기업 화장품 제품 사용 후기를 올린 모습. /출처=사라 팔미라 틱톡 캡처
"여자친구가 전부터 올리브영 스킨케어 제품을 사고 싶다고 한국에 오고 싶어 했어요. 저는 길거리 음식 먹느라 바빴는데 여자친구는 여기 오기 위해 명동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최근 올리브영 등 명동 화장품 가게 밖에는 외국인 남성들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함께 온 여자친구나 아내의 'K뷰티 쇼핑'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인도에서 온 바시시타 바주샨(25)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늘길이 열려도 중국인 관광객이 예전만큼 몰리지 않으면서 '울상'이 이어지는가 했던 명동 화장품 업계가 중국인 외 세계 각국의 외국인으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최근 K-드라마 열풍에 온라인에서 한국 화장품이 입소문을 타면서다. 최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다시 늘면서 기대감도 더해지고 있다.

'쟁여두기' 위해 인근 숙소까지 잡은 외국인들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 입구 앞에 외국인 관광객 등이 여럿 몰려있는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 입구 앞에 외국인 관광객 등이 여럿 몰려있는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그래프=신현보 기자
그래프=신현보 기자
지난 9일 서울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제품 구매를 위해 기다리던 대기 인원만 50여명으로, 매장 내부에 들어선 손님의 90%가 외국인으로 파악됐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 매장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3000명에 달한다. 수년 전이었다면 이곳에는 유커로 가득했겠지만, 이제는 아시아·유럽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화장품을 수십 개씩 쓸어 담았다. 이들은 '쟁여두기'를 위해 대량 구매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많은 제품을 구매하면 이동이 불편할 것을 고려해 숙소를 명동 근처 호텔로 잡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 분주하게 제품 정보를 찾아봤다. 아예 이런 외국인들을 위해 매대에서 '쇼핑 필수 아이템'으로 꼽히는 인기 제품들은 수십 개가 한 번에 전시돼있기도 했다.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에서 스킨케어 제품 등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김세린 기자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에서 스킨케어 제품 등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김세린 기자
한국에 3번째 방문이라는 말레이시아 국적 제넷(40)은 "명동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곳 1위는 올리브영"이라며 "한국 스킨케어 제품이 좋다고 들어서 세럼을 잔뜩 구매했다. 한국 로컬브랜드 제품들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그간 화장품 업계는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사태 후 중국 관련 매출이 급감하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까지 겹치면서 업계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마스크 등 착용으로 피부미용에 대한 관심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와중에 K-드라마 열풍으로 한국 피부 문화·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에서 색조 제품을 발라보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세린 기자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에서 색조 제품을 발라보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세린 기자
여기에 최근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국 화장품이 바이럴을 타고 있는 것도 외국인들의 인기를 더하는 요인으로 파악된다. 일례로 숏폼(짧은 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91만명 팔로워를 가진 한 미국인 인플루언서가 지난해 다수의 영상에서 한국 화장품을 극찬하기도 했다.
LA 다저스 선수단의 아내들이 단체로 올리브영을 방문한 모습.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LA 다저스 선수단의 아내들이 단체로 올리브영을 방문한 모습.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3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팀이 '서울시리즈'를 위해 방한한 가운데 선수단 아내들이 CJ올리브영 매장을 단체로 방문한 사진이 SNS에 확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해외 각지에 K-무비, 음악, 컬쳐 등이 소문이 많이 나면서 한국 여성들의 인기가 높아졌고, 화장품 등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와 선호도·신뢰도가 높아졌다"며 "서양 화장품은 알코올 성분이 많거나 자극적인 제품이 많은데 한국 화장품들은 자극도 없고 부작용도 적다고 입소문이 나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큰손' 중국인들도 다시 몰려온다

외국인의 화장품 소비는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BC카드가 지난해 3월 외국인 소비패턴을 분석한 결과, 화장품 업종의 매출은 1년 새 약 18%, 2년 새 약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최근 '2024년 국내 주요 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중소형 인디 브랜드의 성장성이 확대되는 양상"이라면서 "북미·유럽·일본 등 비중국 지역 등 해외 선진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이 두각을 보이는 등 국내 화장품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화장품 업황의 빠른 회복세가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출처=삼정 KPMG 경제연구원 '2024년 국내 주요 산업 전망'
출처=삼정 KPMG 경제연구원 '2024년 국내 주요 산업 전망'
국가별 방한 외국인 수 순위 및 입국자 수. 지난 12월부터 중국 방한객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
국가별 방한 외국인 수 순위 및 입국자 수. 지난 12월부터 중국 방한객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여기에 최근 다시 급증하고 있는 유커들의 발길도 추가적인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엔데믹 후 대체로 방한 외국인 1위를 기록했던 일본인을 제치고 지난해 12월부터 내내 중국인이 다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일본인의 2배에 가까운 각각 28만명과 34만명의 중국인이 방한했다.

신현보/김세린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