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참패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사의를 밝힌 가운데 후임자 선정을 위한 대통령실과 여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총리 후보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해 벌써부터 퇴짜를 놓고 있어서다. 민주당이 일찌감치 차기 총리 후보자들에 대한 비판에 나서면서 국정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총리 후보 지명도 안 됐는데…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3일 국회 브리핑에서 “이번에 단행되는 인사는 총선 민의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며 후임 총리 및 대통령 비서실장 물망에 오른 여권 인사들을 비판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권영세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비판했다.

그는 “만약 이런 식의 인사가 단행된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에 대한 ‘돌려막기 인사’ ‘측근·보은 인사’”라며 “총선 결과를 무시하고 국민을 이기려는 불통의 폭주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리 임명은 국회 인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민주당의 반대에도 임명을 시도할 경우 4·10 총선 결과로 나타난 바닥 민심이 다시 부각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민주당 내에선 특히 윤석열 정부 장관 출신 인사 기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다. 민주당 한 의원은 “친윤계인 권 의원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한 총리 후임을 하는 게 무슨 국정기조 전환인가”라며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 일각 “총리 추천권 넘겨라”

민주당이 일찌감치 차기 총리 임명과 관련된 문턱을 높게 잡으면서 대통령실은 총리 후보자 발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한 인사도 비슷한 우려로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대통령실 등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는 “대통령실이 추천하는 첫 번째 총리 후보자는 무조건 낙마시킨다는 것이 민주당의 전략”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 조치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해서라도 새 총리 임명에 일단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총선을 통해 사실상 국민들에게 불신임받은 윤 대통령이 추천하는 총리를 야당이 덥석 동의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했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윤 대통령이 아예 후임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국민들이 야당에 힘을 실어준 만큼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물론 국정운영의 책임을 나눠지게 된다는 점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이 같은 어려움을 감안해 대통령실은 가능한 한 계파색이 옅은 정치인 출신을 총리 후보자로 내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이 거론한 인사들 외에도 주호영 의원과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후보군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재영/양길성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