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CBDC 시대를 대비하며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도입되면 조폐공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 아니야? 주위에서 공사의 미래를 많이 걱정한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조폐공사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디지털 화폐로, 분산원장 방식을 적용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 여러 개의 서버에 거래 정보를 분산 저장하기 때문에 거래 조작이 불가능하고, 금융거래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비트코인 등 민간 암호화 자산과 비교해 가치 변동성이 낮고, 자금세탁 등 불법 거래에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 CBDC를 도입한 주요국은 없다. 그러나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을 포함한 100여 개 국가에서 CB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은행도 2020년 전담 조직을 구성해 CBDC 연구를 시작했고, 조만간 BIS 및 6개국 중앙은행 등과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CBDC 생태계는 한국은행과 금융회사가 거래하는 ‘기관용 중앙은행 화폐’와 금융회사와 국민 간의 ‘토큰화한 예금’이라는 두 계층 구조가 될 전망인데, 조폐공사는 후자에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조폐공사는 10여 년 전부터 디지털 부문에서도 위·변조 방지 기술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해 왔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현재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와 지역사랑상품권 서비스인 착(chak) 지급결제망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공사의 지급결제망은 CBDC 체계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국민은 CBDC를 도입할 경우 모든 거래가 기록돼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고령자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접근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CBDC를 도입하더라도 현금 통화가 일정량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조폐공사는 디지털화폐만 쓰이는 세상에 대비해 정전 등 비상 상황 시 오프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고, 네트워크 연결이 없어도 작동하는 디지털화폐 지갑인 콜드월렛(cold wallet)을 중점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다. 그동안 조폐공사는 제조업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기업으로의 사업 전환을 통해 CBDC에서도 디지털 조폐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한국은행과 긴밀히 협력해 CBDC 생태계 구축에 역할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공사는 화폐 수요 감소에 대응해 제조업에서 ICT 전문기업, 문화기업(기념 메달, 불리온 메달, 예술형 주화 제조 등), 수출기업(면 펄프, 특수잉크, 안료 등 수출)으로 사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사업 전환은 국내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해외 조폐기관에도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