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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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골프를 즐겨치던 40대 신 모씨는 지난달 모르는 번호로 골프용품을 판매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문자에선 신 씨의 본명을 알고 "신XX 고객님 마지막 세일입니다"이라는 식으로 사이트를 홍보했다. 신 씨는 해당 사이트가 자신이 골프를 치는 업체의 제휴업체라고 생각해 의심 없이 물건을 구매했다. 며칠 후 돌연 사이트가 사라진 것을 인지한 신 씨가 동일 수법으로 당한 사람을 수소문해보니 피해자가 1000명이 넘었다.

허위 쇼핑몰을 개설한 후 사기를 치는 사이버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골프채, 자동차용품 등 고가의 상품을 최저가로 올려놓고 고객이 돈을 잔뜩 받은 뒤 사이트를 폐쇄하는 식이다. 이런 사이버 사기가 늘고 있음에도 검거율은 떨어지고 있다.

허위 쇼핑몰 개설 후 입금 받으면 '먹튀'

3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라운딩 샵’ 쇼핑몰을 운영자 이 모 대표를 사기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이 대표는 골퍼와 골프 애호가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쇼핑몰 홍보 문자를 보낸 뒤, 결제를 유도해 돈을 받고 잠적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 금액은 1억원 이상으로 평균 30만~50만원 씩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신 씨는 "개인당 피해 금액은 적게는 8500원부터 많게는 300만원으로 피해자 규모는 1000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올들어 지난달 초까지 2개월 간 '라운딩.com'이라는 인터넷 쇼핑몰 가입안내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자에선 고객 개개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홍보하고 있어 사기라는 점을 의심하기 어려웠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30대 피해자 이 모씨는 “특정 골프 사이트를 통해 유출된 개인 정보를 이용한 것 같다”며 “해당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해당 사이트를 이용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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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쇼핑몰 내 판매 상품은 골퍼들이 선호하는 유명 브랜드의 레플리카 제품(짝퉁)들이었다. 이 씨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문구들과 사진들을 이용해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이 대표는 허위 쇼핑몰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이트를 진짜 쇼핑몰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한 피해자는 "대표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이용해 1분 이내에 답변을 주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며 "당연히 잘 운영되고 있는 쇼핑몰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카드는 불가하고 현금으로만 결제하도록 유도했다. 한 피해자의 "카드 결제는 안 되냐"는 문의에 "레플리카 제품을 파는 관계로 (단속에 걸릴 수 있어) 현금결제만 가능하며, 추후 카드 결제 기능을 도입할 예정"에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설득했다.
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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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증가하는 사이버 사기...검거율은 '뚝'

하지만 이 대표는 3월초 돌연 잠적했다.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는 '유명 브랜드 의류 및 골프용품 가품을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 "라운딩 샵"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며 지난달 초 주의보 내리기도 했다. 센터 측은 “현재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하며 해외서버를 통해 운영되는 사기 의심 사이트”라며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 같은 허위 쇼핑몰 사기를 포함한 사이버 사기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사기 범죄 건수는 2022년 15만5715건으로 2021년 14만1154건 대비 10.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 11만2000건과 비교하면 39.0% 증가했다. 경찰청이 집계하는 사이버 사기에는 △가짜 쇼핑몰·이메일 사기 △직거래 사기 △투자 빙자 가상자산 등 이용 사기 △게임사기가 포함된다.

발생 건수 대비 검거 건수를 나타내는 ‘검거율’은 하락했다. 2017년 87.2%였던 사이버 사기 범죄 검거율은 2021년 70.2%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종 사기가 속속 등장하고, 그 수법이 고도화·지능화하는 가운데 경찰의 단속이나 수사가 이를 뒤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 사기의 추가 피해자를 막기 위한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지만, 경찰은 사이트 차단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온라인상 불법·유해 정보의 차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 기간 평균 10일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