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승계의 시간, 분쟁의 시간]“기쁠 줄 알았지만 기쁘지 않고 마음이 아프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싶지 않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OCI와 부득이하게 표를 다투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선다.”한미약품-OCI그룹 통합을 반대하며 3개월간 어머니, 여동생과 공방을 벌인 끝에 지난 3월 주총에서 승리한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밝힌 소회다. 한미그룹 모녀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다.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지분 경쟁이 팽팽하게 이어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임종윤·종훈 형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최근 주요 기업 주총이 마무리되면서 재계를 덮친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의 승자와 패자가 나왔지만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 패자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다시 불씨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재계에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오너일가 간 재산·상속 관련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과 한화는 일찌감치 승계 관련 분쟁을 겪었다. 1969년 삼성에서는 이병철 회장의 둘째 아들 이창희가 아버지를 몰아내려고 했던 사건이 벌어졌다. 한화는 1990년대 김승연, 김호연 형제간 상속 분쟁을 겪었다. 그 결과 한화와 빙그레가 분리됐다. 2000년에 벌어진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한국 대기업에서 2세로 승계되는 과정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승자였다. 이어 2005년 두산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져 양측은 수년간 진흙탕 싸움을 이어갔다. 이후 롯데·한진·효성·한국앤컴퍼니·금호·LG 등도 재산권이나 경영권 분쟁을 피하지 못했다.이 가운데는 경영권 분쟁이 대물림되는 경우도 있었다. 금호가의 경영권 갈등 역사는 뿌리가 깊다. 금호석유화학 박철완 전 상무가 일으킨 ‘세 번째 조카의 난’이 최근 박찬구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박 전 상무가 내년 주총에서도 주주제안에 나설 수 있어 분쟁의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금호석유화학그룹과 박 전 상무와의 갈등은 2019년 주총에서 박 전 상무가 박찬구 회장의 재선임에 반대하면서 촉발됐다. 박 전 상무는 당시 처우와 급여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박 전 상무의 경영권 분쟁 시도는 박찬구 회장의 장남이자 3세 경영인인 박준경 사장으로의 승계 작업을 본격화한 계기가 됐다. 2020년 박 사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반면 박 전 상무는 승진하지 못했다. 이후 박 전 상무가 박 회장과의 지분 공동 보유와 특수관계 해소를 선언한 뒤 경영권 분쟁이 이어졌다.금호그룹은 박인천 창업자의 셋째 아들인 박삼구 전 회장과 넷째 아들인 박찬구 회장의 갈등으로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갈라졌다. 둘로 쪼개진 이후에도 양측이 소송과 고발을 이어가는 등 수년간 갈등이 지속됐다.최근 터져나온 고려아연과 영풍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집안은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1949년 장병희(영풍)·최기호(고려아연) 창업자가 동업자 정신으로 영풍그룹을 설립한 뒤 75년간 동업 관계를 유지해왔다. 양측이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오며 갈등이 시작됐다.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체제가 시작된 이후 양측의 지분 확보 경쟁이 본격화됐다. 올해 주총을 둘러싸고 고려아연과 최대주주 영풍이 사상 첫 표 대결을 벌였으나 결과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하지만 주총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분쟁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총 이후 고려아연은 완전 독립을 위해 사옥을 영풍빌딩에서 종로로 이전하고, 그동안 영풍과 함께 썼던 기업이미지(CI)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돋보기] 재계 경영권 분쟁 사례한미그룹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모녀가 상속세 부담에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을 추진했으나 장·차남인 임종윤·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반대하며 오너간 경영권 분쟁이 발발결과: 한미사이언스 주총 표 대결에서 통합 반대파인 장·차남이 승리고려아연75년 동업자 관계였던 장형진 영풍 고문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고려아연 지분 확보 경쟁에 이어 주총에서 배당안과 정관 변경안을 놓고 사상 첫 표 대결을 벌임결과: 표 대결이 무승부로 끝났지만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모든 협업 중단을 추진하며 ‘홀로서기’를 가속화한국앤컴퍼니그룹조양래 명예회장이 차남 조현범 회장에게 자신이 보유한 그룹 지분 전량을 양도하면서 경영권을 승계하자 조현식·조희경·조희원 삼남매가 조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 2023년에는 삼남매가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함결과: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이 방어에 나서면서 삼남매의 실패로 끝남금호석유화학그룹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가 2021년부터 자사주를 화두로 경영권 분쟁 중결과: 올해 박 전 상무가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함께 세 번째 ‘조카의 난’을 일으켰으나 또다시 박 회장 측이 완승효성그룹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2014년 형 조현준 회장과 주요 임원진을 횡령·배임으로 고발하며 ‘형제의 난’을 촉발결과: 조 전 부사장이 승계 구도에서 밀려나며 조현준·조현상 형제의 3세 경영 체제 안착롯데그룹2015년부터 벌어진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결과: 신 전 부회장이 매년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자신의 이사직 복귀안과 신 회장의 해임안을 제출해 표 대결을 벌였으나 모두 패배함한진그룹조양호 회장 타계 이후 경영권을 물려받은 조원태 회장에 대항해 누나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 3자 주주 연합을 결성하며 경영권 장악 시도결과: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면서 조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 경영권 분쟁 종료[돋보기] 구찌·아디다스도 피하지 못한 가족 분쟁한국보다 오랜 가족경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많은 해외에서는 더 극단적인 사례도 많다. 1921년 피렌체의 작은 가죽제품 공방에서 시작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창업자 구치오 구치의 사망 이후 손자 세대에서 벌어진 경영권 갈등으로 청부 살인까지 일어났다.1995년 구찌의 3대 회장인 마우리치오 구치를 청부 살해한 사람은 전 부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다. 둘은 파트리치아의 집착과 허영심으로 가정불화를 겪게 되며 1991년 이혼했다.구찌의 경영권을 승계한 마우리치오가 1993년 투자그룹에 경영권을 매각한 뒤 1억7000만 달러(약 1866억원)를 챙기고도 자신에게 인색하게 굴자 증오가 심해져 결국 청부 살인을 의뢰했던 것이다. 가족 갈등과 경영 실패로 구찌는 3대 만에 투자그룹으로 넘어가게 됐다. 1924년 탄생해 올해 100주년이 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도 가족기업이었다. 독일인 형제 아돌프 다슬러, 루돌프 다슬러가 세운 운동화공장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에서 시작됐다.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의 동생 아돌프는 신발 제조를 맡았고 언변이 뛰어난 형 루돌프는 마케팅을 담당했다.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육상 4관왕에 올랐던 제시 오언스가 다슬러 러닝화를 신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지도가 상승했고, 세계 각국의 육상 선수들이 다슬러 운동화를 신길 원하면서 1936년부터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나치의 스포츠 장려 정책에 힘입어 공장은 날로 발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업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갈등이 깊어졌다. 1948년 형제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고 형 루돌프가 ‘푸마’를 설립했고 동생 아돌프는 1949년 ‘아디다스’를 만들었다. 결국 ‘형제의 난’이 세계적인 두 스포츠용품 회사를 탄생시킨 셈이다.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대형 증권사 고액 자산가들이 지난주 2차전지와 반도체 종목을 집중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폭이 컸던 일부 바이오주도 저점 매수 기회로 삼았다.7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이 증권사 계좌의 평균 잔액이 10억원 이상인 고객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2차전지 전해액 생산업체 엔켐을 154억원가량 사들였다. 이 기간 순매수 1위였다. 지난달 주춤했던 엔켐 주가는 이달 들어 다시 51.76% 상승하며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순매수 2위는 SK하이닉스(72억원)였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올 들어 29.19% 올랐다. 4일엔 5조2000억원을 들여 미국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해 기대를 더욱 키웠다. 바이오 업종 새 대장주로 꼽히는 알테오젠은 순매수 3위(47억원)였다.미래에셋증권 계좌를 사용하는 수익률 상위 1% 주식 고수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5일까지 반도체 레이저 공정장비 업체 이오테크닉스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 이오테크닉스는 최근 투자자의 관심이 커진 유리기판 관련주로 분류된다. 유리기판은 유기 소재 대신 유리를 쓰는 기판인데, 전력 소비가 적어 인공지능(AI) 시대에 수요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약품, HLB바이오스텝, 카카오도 고수들의 주요 순매수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3월말 매화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대부분 기업들의 주주총회도 마무리되고, 여기서 확정된 2023년 재무제표가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속속 나타납니다. 보릿고개와 같은 지난 2년 남짓 힘든 고비를 넘긴 바이오기업들의 주머니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바이오기업이 연구·개발(R&D)을 지속하면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계산하는 데 현금가용년수 만큼 유용한 지표도 없습니다. 미국 나스닥 기업을 포함한 전세계 바이오텍들의 현금보유 수준을 간단히 계산할 수 있어 일반 투자자들도 쉽게 사용 가능합니다. 2023년 바이오기업의 재무상태표에 표기된 유동자산에서 유동부채를 뺀 값을 온기 영업손실 절대값으로 나누면 현금가용년수가 산출됩니다.2023년말 시점에서 산출된 값이기 때문에 2024년에 들어선 이후의 유상증자나 기술수출 등으로 인한 자금유입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지만, 기업들의 보유현금 수준을 개략적으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의 분석에 따르면 나스닥 바이오텍의 평균 현금가용년수는 대략 2~3년 정도입니다. 전체의 약 30% 기업이 매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자금을 빌려 연구개발을 지속하는 바이오텍의 특성상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은 일상적인 재무활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지난 2년간 자금조달이 원활치 않았습니다. 궁지에 몰린 대부분의 바이오텍이 핵심 파이프라인(신약개발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면서 인력을 줄이는 비자발적 구조조정을 꾸준히 진행해왔습니다.작년 6월말 기준 국내 바이오기업의 현금가용년수는 0.8년까지 축소돼 자금압박이 얼마나 심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보유 현금으로 1년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핵심 R&D를 지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6개월이 지난 현재 시점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졌을까요?국내 40개 바이오텍의 2023년말 현금가용년수를 산출해 봤습니다. 6개월 사이에 거래정지된 2개 기업(엔케이맥스, 카나리아바이오)과 영업이익이 흑자를 기록한 기업 3개를 뺀 나머지 34개 기업의 현금가용년수는 2.1년으로 산출됐습니다. 이는 작년 6월말 0.8년에서 상당히 개선된 수치입니다. 계산에서 엔케이맥스와 카나리아바이오를 제외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느끼는 개선은 숫자보다 크지 않을 겁니다.현금가용년수가 1년 이하로 1년 안에 추가적인 자금조달을 해야 하는 기업은 34개 기업 중 32%인 11개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6월 말 41%에서 어느 정도 개선됐으며, 미국 바이오텍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일부 기업이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나머지 회사들로 자금이 순환되는 효과도 작용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특징적인 건 기업별 자금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식 거래가 정지된 엔케이맥스와 카나리아바이의 경우 작년 6월말 시점 현금가용년수가 각각 -1.1년, -10.1년이었습니다. 올리패스, 신테카바이오, 셀리드, HLB, 진원생명과학, 티앤알바이오팹, 앱클론, 제이엘케이, 뷰노, 펩트론 등은 현금가용년수가 작년 6월 말 대비 개선되지 않거나 더 악화됐습니다.현재 금융시장 분위기를 고려할 때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기는 어려워 유상증자나 CB 발행 가능성이 높아 이들 기업은 주주가치 희석(주식수가 늘어남에 따라 주당 가치가 떨어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이들 기업에 혁신적인 임상개발이 이루어져 빅파마와 기술협업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거나 향후 높은 매출성장이 기대된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주주가치 희석과 매출 성장 사이의 균형잡힌 투자판단이 요구됩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