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혼다·야마하의 발상지 하마마쓰上에서 계속 일본에는 세계적인 기업이 동시에 탄생한 '일본판 승산마을'이 있다. 시즈오카현 최대 도시 하마마쓰가 그 무대다.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자동차 혼다 스즈키, 세계 최대 악기 제조사이면서 엔진 전문 기업인 야마하, 피아노 생산업체인 가와이악기제작소의 창업자들이 모두 이 지역에서 배출됐다. 하마마쓰는 일본 3대 면화산지에서 방직기, 피아노 등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TV 4대 값이면 자동차 산다"…세계서 히트 친 車 정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하마마쓰는 항공 자위대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지형이 넓고 평평해 활주로를 만들기 좋고, 도쿄와 오사카의 가운데라는 입지적인 이점이 있었다. 야마하의 역사를 소개하는 야마하발동기 커뮤니케이션 플라자의 역사관 입구에는 오래된 프로펠러가 전시돼 있다.

피아노를 만드는 야마하가 프로펠러와 관계가 있을가. 이 시절 비행기 프로펠러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나무를 여러겹 겹쳐서 곡선으로 만드는 제작 방식은 피아노의 목공 기술과 동일했다. 악기 제조사였던 야마하로부터 오토바이에서부터 보트, 골프카트, 제설기까지 만드는 야마하발동기가 탄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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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인 내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항공기 프로펠러는 금속으로 바뀌게 된다. 금속 프로펠러 제작 기술을 응용한 사업이 관악기 제작이다. 하마마쓰가 오늘날 세계 최대 건반악기와 관악기 생산 도시로 성장한 배경이다.

1915년에는 오늘날 JR의 전신인 일본철도의 기관차를 생산하는 공장까지 들어서면서 기계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됐다. 1923년 일본 정부는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를 모방해 일본 각지에 농업 상업 공업 분야의 전문학교를 개설했다. 제조업 전통이 강한 하마마쓰에는 기계공학을 전문으로 하는 하마마쓰고등공업학교(현 시즈오카대 공학부)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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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재료와 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형, 장인정신(모노즈쿠리)의 전통에 현대식 교육이 뒷받침하면서 하마마쓰는 일본 제조업 거장들의 산실이 된다. 도요타 혼다 스즈키 야마하의 창업자들은 하나같이 창고형 공장에서 부품을 만들고 개량하는 엔지니어 출신들이었다.

하마마쓰가 배출한 숱한 엔지니어들 가운데 이들의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건 기업가 정신과 장인정신이 누구보다 투철했기 때문이다. 구멍가게 수준의 공장을 운용하면서도 이들 창업자들은 최고의 기술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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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차의 선구자 스즈키의 기본 정신은 '소소경단미小少輕短美'였다. '작고 적고 가볍고 짧고 아름답게'라는 원칙을 스즈키의 제품 뿐 아니라 생산 공장에도 적용했다. 공장 자체를 소형으로 운영해 비용을 낮추고, 근로자가 쾌적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수고를 들여 작고 가벼우면서 연비가 좋은 차를 만든다는 원칙을 전 세계 스즈키 공장이 따르고 있다.

조립 공정의 부품 선반을 기울어지게 만들어 기계를 쓰지 않고도 부품이 항상 근로자 주변에 모여 있도록 하고, 콘베이어벨트를 가능한 직선으로 만들어 부품의 이동거리를 최소화하는 등 공장 설계 하나하나까지 불필요한 낭비를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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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 공정도 불필요한 작업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보통 자동차 공장의 시트 장착 공정에서는 대형 리프트를 사용해 시트를 반대편으로 넘긴다. 스즈키는 앞차와 뒤차 사이의 좁은 틈으로 좌석을 보내는 슬라이딩 시스템을 채용해 리프트 설치 비용을 줄였다.

스즈키는 왜 이렇게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공정을 최소화할까. 이는 일본 경차의 역사가 소형차와 차별성을 두기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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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의 크기와 가격이 소형차와 비슷하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성능과 편의성이 떨어져서는 더더욱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일본 경차의 기준은 배기량 660cc 이하, 길이 3.4m, 폭 1.48m, 높이 2m 이하로 정해져 있다. 정해진 한계 안에서 최대한 소형차와 비슷한 성능과 편의성을 확보하면서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 그것이 스즈키가 살아남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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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설계부터 조립 공정까지 낭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덕분에 스즈키는 1960년대 65만5000엔짜리 경차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경차는 2륜 구동 승용차라는 상식도 뒤짚었다. 1970년에는 오늘날까지도 판매되는 4륜구동 지프 짐니를 출시했다.

그런데도 1970년대 스즈키는 다시 한번 존립의 위기를 맞는다. 제1~2차 오일쇼크로 기름값이 치솟고 경차의 규격 확대와 배출가스 규제로 소형차와 구분이 애매해지면서 극도의 판매부진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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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마저 나오던 때 돌파구는 이번에도 '소소경단미小少輕短美'의 정신이었다. 1979년 스즈키는 47만엔짜리 경차 알토를 출시했다. TV 한 대가 14만엔, 9일짜리 유럽 여행 상품이 48만8000엔 하던 시절이었다.

TV 4대 값이면 살 수 있는 자동차 알토는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됐다. 8세대로 진화해 오늘날까지 판매되는 알토는 전세계 148개국에서 1476만대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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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경차의 상식을 뒤집는 도전은 계속됐다. 1993년 내놓은 와곤R은 자전거도 실을 수 있는 실내공간으로 '경차는 작은 차'라는 선입견을 뒤집었다. 1999년 발매한 경승합차 에브리는 현재 혼다와 닛산에도 납품하면서 일본의 물류를 책임지고 있다.

현재 일본 자동차 시장의 40%가 경차다. 경차 비중이 50%를 넘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다. 도요타·혼다·야마하의 발상지 하마마쓰下로 이어집니다.

시즈오카 하마마쓰=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