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다, 전종서는 마침내 그레이트 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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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아프리카 부시맨들 사이에는 리틀 헝거하고 그레이트 헝거가 따로 있대. 리틀 헝거는 그냥 배고픈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사는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그레이트 헝거가 더 좋은 거래. 멋있지? 그레이트 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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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디렉팅’도 그랬을 것이다. “종서, 너는 행사장 알바女야. 그러니까 이런 대사를 유식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하면 안돼. 행사장에서 몸을 흔들 듯 해봐.” 뭐 그쯤의 연출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물론 ‘뇌피셜’이다.
전종서가 그 다음 작품인 넷플릭스 영화 <콜>로 백상예술대상과 부일영화상,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서 모두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탄 것은 순전히 <버닝>의 영향이 컸다. 그러니 전종서의 지금, 그녀의 성장은 다 이창동 덕이다. 그건 마치 문소리가 이창동의 <박하사탕>에 단 한 씬만 출연한 이후 <오아시스>로 주연이 돼 스타덤에 오른 것과 같은 얘기이다. 물론 <콜>은 이창동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창동 만큼 떡잎을 알아 보는 감독도 드물다는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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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연기는 다분히 연극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자 이제부터 잘 봐, 내가 연기에 들어 갈 거야 하는 느낌을 준다.(전종서는 안양예고, 세종대 영화과 출신이다.) 이런 연기 투는 캐릭터가 센 역에 어울린다. 창녀, 양아치, 일진, 색녀 등에 맞는다. <몸값>이 그랬다.
손석구와 나온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도 전종서는 거침없이 어제 밤의 잠자리와 섹스의 기술, 남자의 물건 크기를 입에 올린다. 전종서는 이런 연기가 어울린다. 전종서에게 <웨딩 임파서블> 같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가 연기를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여배우에게 있어 통과의례와 같은 일이다. 전종서는 요즘 그렇게 또 다른 관문을 하나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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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에서 전종서는 역시 자신이 ‘또라이’ 연기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연기와 역할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여배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찾으면 없다. 특히 2,30대 여배우 중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정은은 50대 중반이고 김선영은 40대 후반이다. 젊은 배우 중 이상희가 ‘미친 연기를 미친듯이 하는’ 배우 중 한 명인데 그녀 역시 40을 넘겼다. 갓 서른인 전종서를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찾는 이유이다.

전종서를 보고 있으면 여자 부기맨이 생각이 난다. 처음엔 리틀 헝거였을 것이다. 그러다 불현듯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전종서는 아직 그레이트 헝거까지는 되지 못했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게 어쩌면 자신의 (거친) 삶에서 그대로 배어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그녀는 중학교를 자퇴한 후 캐나다를 오가며 청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는 자기 것만으로 연기를 해서는 안된다. 남의 것도 빌려 와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더 배워야 한다. 더 깊이 사고를 해야 한다. 전종서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레이트 헝거가 될 것이다. 그건 이창동의 예언 아닌 예언이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