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예술 몰라요!" 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면 모두 깜짝 놀라는 것이 있다. 알고 보니 집 근처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다. 무관심할 땐 눈에 띄지 않다가 유심해진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
결국 보는 일도 마음이 하는 일이다. 예술을 즐기는 방법도 바로 마음으로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감상에 뭔가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향유에 지식이 중요치 않다는 것과 그림 앞에 쫄지 말고 맞닥뜨려 보라는 것. 느리게 걷다가 마음이 머무는 그림 앞에 멈춰서라는 것. 15분 몰입하여 보고 나의 감상을 자유롭게 기록해보라는 것.

이 간단한 예술 향유법이 퍽 유용해서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함께 전시를 보고 감상을 나누며 모두 예술 향유자가 됐다. 그런 이후에 미술사 공부도 하고 예술 책도 읽으며 더욱 깊어졌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아니한 것. 무릇 사랑하게 되는 일이 가장 먼저이고, 15분의 몰입이 그를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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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은 굉장한 정신 작용으로 응축된 힘을 품은 순간이다.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에 나오듯이 몰입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저자 말대로 무언가에 몰입해서 시간의 개념마저 사라져 스스로 가장 충만한 상태까지 가는데는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쩌면 몰입이란 행복을 체득해가는 과정 같기도 하다.

삶의 행복이 멀리 있는 파랑새 찾기가 아니라 눈 앞의 봄날에 눈을 뜨는 일이라는 것. 어제 본 목련 꽃망울이 오늘 톡 벌어져 피어나는 순간을 알아채는 것. 그를 보며 아아 어여뻐라 웃는 나, 기쁜 나, 행복한 나를 만끽하는 것. 궁극적으로 몰입이란 진짜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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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몰입을 연습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물론 영화관, 음악회 등 우리를 재미있게 몰입시키는 수많은 예술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 공간들은 능동형이기보다 수동적 감상 공간이다. 가만히 앉아서 보여주는대로, 들려주는대로 몰입해야 한다.

그런데 미술관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이 광활한 전시장에서 나는 어느쪽으로 걸을 것인가. 어떤 그림 앞에 머물 것인가. 슥 보고 스쳐가는 것도 오래 보며 집중하는 것도 오직 나의 선택이다. 이렇게 예술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몰입력은 상승하고 우리는 능동적 향유자가 된다.

향유자가 되면 눈이 밝아진다.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스쳐 지나가던 벽 앞에도 곧잘 멈춘다. 자주 가던 건물 로비에 이런 그림이 있었다니! 예술을 발견하고, 우리 동네에 이런 미술관이 있었다니! 깜짝 놀라며 여태 알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괜찮다. 예술과 내가 만나는 것도 타이밍이다. 한 번 인연이 되면 평생 가는 친구가 되므로 마음 편히 그를 맞이하면 된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나는 약속이 잡히면 제일 먼저 그 동네 미술관부터 검색해본다. 약속의 앞이나 뒤로 향유의 시간을 확보한다. 오늘 들른 곳은 사당역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이다. 번잡한 환승역인 사당역 근처에 뜻밖에 호젓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은 크고 오래된 문과 삐그덕거리는 나무 바닥, 우아한 하얀 기둥 등 역사의 정취가 가득했다.

이곳은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된 건물이었다고 한다. 복도를 중심으로 방으로 구성된 전시실을 둘러보며, 오래된 나무 바닥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오후 햇살 같은 여유가 스몄다. 게다가 무려 전시는 <권진규의 영원한 집>展.

2022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했다. 유족이 기증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는 애틋했고 애절했다. 한 천재 예술가의 내면이 속속들이 드러나있었다. 자소상의 눈빛은 고요한데 강렬해서 아뜰리에에서 끝없이 자신을 마주하며 파고들던 그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숏폼 콘텐츠에 중독되는지 모른다. 심지어 명상도, 운동도 스마트폰이 컨트롤해주는 시대다. 우리는 주도적으로 나의 주체성을 길러야 하고, 존재로의 몰입을 연습해야 한다.
<권진규의 영원한 집>展
<권진규의 영원한 집>展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권진규 전시는 몰입의 즐거움을 넘어 깊은 감동을 선물한다.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것도 몰입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의 자소상을 오래오래 응시하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봄날에도 자주 추워하며 움츠리는 어깨와 자꾸 먼데로 향하는 시선을 알아챘고 지금이야말로 나를 채워야하는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술의 완벽한 위로였다.

작가의 드로잉북과 책들, 그의 막내여동생 권경숙 여사의 인터뷰까지, 권진규의 모든 면면을 느낄 수 있다. 유족들이 권진규의 아뜰리에와 작품을 전부 기증한 것에 대해 여동생은 말한다.
"내 것은 없어요. 오빠도 모든 것은 공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돌려줘야죠."
<권진규의 영원한 집>展
<권진규의 영원한 집>展
미술관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사는 일에 바빠서, 예술에 문외한이라, 가까이 두고도 스쳐지나가거나, 여기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각박한 사회, 메말라가는 감성으로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나를 만나고 특별한 행복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으로 약속 전후 미술관 가기를 추천한다. 미술관을 느리게 걸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그림 한점 응시하고 기록하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 몰입의 시간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탁월한 향유의 시선을 지니게 해준다.

찾아보면 아주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다. 내 눈길과 마음의 끝에 예술이 있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