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된 마이너스 금리가 17년 만에 해제됐지만 엔화 가치는 34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 기업이 해외 수익을 자국으로 가져오는 대신 현지에 쌓아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엔저(低)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본 정부는 해외 자금을 본국으로 가져오면 세금을 일시적으로 낮춰주는 ‘자금 송환(repatriaton) 감세’를 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엔저 브레이크’ 상실한 도쿄 외환시장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1년 이후 4년 연속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도세가 매수세를 웃돌았다고 24일 보도했다. 일본 기업과 금융회사가 주로 거래하는 도쿄 외환시장은 전통적으로 엔화 매수세가 우위를 보이는 시장이다.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팔고, 엔화를 사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1999~2020년 21년간 엔화 매도세가 우위를 보인 해는 네 차례뿐이었다.
日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도…시장은 엔低 베팅
하지만 주요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2021년부터 도쿄 외환시장은 ‘엔저 브레이크’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루평균 엔화 가치의 하락폭이 0.04엔까지 확대됐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급격한 금리 인상 속에서 일본은행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마이너스 금리는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요인으로 지적됐다.

지난 19일 일본은행은 17년 만에 기준 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했다. 하지만 엔저는 멈추지 않고 있다. 23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151.4엔으로 34년여 만의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업을 우선시하는 일본 기업의 동향을 원인으로 꼽는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본국으로 가져와 엔화로 바꾸는 대신 현지에 쌓아두기 때문이란 것이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23년 말 일본 기업 해외 법인의 내부유보금은 48조엔(약 427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인력난이 심각한 일본으로 송금할 동기가 약하다”고 설명했다.

“日정부 ‘자금송환 감세’ 검토”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해 연 0.25%, 2025년 연 0.5% 수준에서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마이너스 금리 해제 이후에도 금리 인상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과의 금리차가 줄지 않으면서 엔저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는 일본 정부가 자금 송환 감세를 도입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엔화 가치 하락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가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일본으로 들여오는 것을 지원하는 자금 송환 감세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5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미국으로 송금할 때 적용하는 세율을 1년간 한시적으로 대폭 인하했다. 세금 우대가 적용되는 1년 동안 해외 유보금을 미국으로 송금하는 기업이 크게 늘면서 2005년 달러지수는 13% 상승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