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혐의에 대한 실형 선고 비중이 1년 새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형량도 예전에 비해 크게 무거워지는 추세다. 1심에서 무죄였던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히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검찰이 전문 수사인력 투입 등을 통해 수사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법원 역시 양형기준 상향에 맞춰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해지는 처벌 수위…징역 5년도 등장

점점 세지는 '기술유출 범죄 처벌'…실형 3배 늘었다
19일 법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심에서 기술유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총 31명이었다. 2022년 10명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약 세 배로 늘었다. 2021년(15명)과 비교해도 두 배가량 증가했다. 반대로 무죄 선고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21년 42명, 2022년 16명, 지난해 15명을 기록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의 평균 형기(징역)도 길어지고 있다. 2021년 17.1개월, 2022년 16.2개월에서 지난해는 23.7개월로 늘었다. 지난해는 사상 최장인 징역 5년 선고 사례가 나온 가운데 2명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021~2022년에는 가장 긴 형기가 징역 3년(1명)이었고 징역 2년도 4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모두 1년6개월 이하여서 ‘솜방망이 처벌’ 지적이 일었다.

사건별로는 삼성전자 자회사인 국내 최대 반도체 세정장비 제조기업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의 핵심 도면을 중국에 유출한 인물들이 유죄를 받은 판결이 지난해 대표적인 중형 사례로 꼽힌다. 범행을 주도한 전직 세메스 연구원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세메스의 다른 기술을 몰래 사용해 만든 장비를 중국에 수출한 혐의로도 지난 1월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10년간 복역해야 한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실형으로 바뀌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전직 팀장급 직원인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2월 재택근무 중 LG디스플레이의 내부 문서중앙화시스템에 접속해 초대형 OLED TV 관련 도면 파일 등을 자녀의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그는 1000여 장의 사진을 찍고 중국 기업 관계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직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유출된 기술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개발한 성과로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며 “이런 범죄를 가볍게 처벌하면 해외 경쟁사의 인재 영입을 빙자한 기술 탈취를 방치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전문인력 투입, 법원은 엄벌주의

대형 기술유출 범죄에 검찰이 고강도 수사에 나서면서 연달아 범행 입증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검찰청은 2022년 9월 과학수사부에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신설하고 지난해 11월 다른 정부 부처 및 정보·수사기관과 함께 ‘범정부 기술유출 합동대응단’을 꾸리는 등 수사 전력을 강화했다.

이공계를 전공했거나 변리사 자격을 갖춘 검사들은 기술유출 수사부서로 적극 배치해 전문성도 보강했다. 검찰은 이를 통해 2021년과 2022년 10% 수준에 그치던 실형 선고율(1심 기준)을 지난해 28.2%로 높였다.

법원도 최근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강화 움직임에 맞춰 판결 과정에서 엄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기술 해외 유출 범죄의 권고 형량을 기존 최대 징역 9년에서 15년으로 바꾸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새 지식재산·기술 침해 범죄 양형기준안을 이달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 기업 임직원의 해외 기업 이직 허용 여부를 다투는 민사재판에도 반영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지난해 10월)와 SK하이닉스(올 3월)가 신청한 직원 전직 금지 가처분을 잇달아 받아들였다. 핵심 기술이 넘어갈 수 있다는 두 회사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김진성/권용훈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