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에노의 실수
통화정책 수장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사람이다.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기본 역할이지만 자칫 그 목표에만 매몰돼 정책을 잘못 쓰면 나라 경제를 나락으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경제를 망친 예를 들 때마다 소환되는 몇 명의 중앙은행 수장이 있다. ‘에클스의 실수’ ‘볼커의 실수’처럼 그들의 이름 뒤에는 실수(failure)라는 오명이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매리너 에클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1937년 당시 대공항을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긴축정책을 폈다가 경제를 도로 주저앉혔다. ‘인플레 파이터’로 명성을 날린 폴 볼커 의장은 반대로 1980년 카터 행정부의 압박에 연 17% 금리를 9%로 낮춰 잡혀가던 인플레이션에 다시 불을 붙이는 오점을 남겼다.

일본에선 ‘미에노의 실수’가 대표적이다. 부동산 버블이 정점이던 1989년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는 기준금리를 연 3.75%에서 6%로 단숨에 끌어올려 자산가격의 거품을 꺼트렸다. 월급을 모아서는 도쿄 시내에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시절이라 그는 ‘헤이세이의 오니헤이’(에도시대 도적떼를 처단한 소설 속 주인공)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과도한 금융 긴축으로 디플레이션을 불러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Fed는 일본을 교훈 삼아 2000년 미국의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을 때 재빠르게 금융 완화로 대응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일본이 어제 2007년 이후 무려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일본은행은 은행들이 돈을 맡길 경우 연 -0.1%의 단기 정책금리를 적용해 왔는데, 이번에 이를 연 0∼0.1%로 올렸다.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국채 매매로 장기금리를 조절하던 수익률곡선 제어(YCC)도 그 역할을 완수했다며 폐기했다. 디플레 탈출 자신감이 통화정책 전환의 첫발을 뗀 배경이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엔화 가치 상승 등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국내 제조업 경쟁력에도 중요한 변수다. 당분간 추가 금리 인상 등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