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러시아의 민주주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 통치와 옛 소련에 대한 잔상이 겹쳐 러시아를 공산주의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는 헌법상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다. 선거로 대통령·의원을 뽑고, 다당제를 갖추고 있다. 공산당은 집권 통합러시아당에 이은 제2당이다.

그렇다고 서구식 투명한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을 보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형적이다. 푸틴은 2000~2008년까지 임기 4년의 대통령을 연임한 뒤 3연임 제한에 걸리자 심복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얼굴마담 대통령에 세우고 자신은 총리 타이틀로 실권을 이어갔다.

2012년 대통령에 다시 뽑히기 전 임기를 6년으로 늘렸고, 2018년 재선된 뒤에는 대통령 선출과 관련해 또 한 번의 기상천외한 개헌을 단행한다. 2024년 선출하는 대통령부터는 연임 여부와 상관없이 총 두 차례만 맡을 수 있되 ‘개헌 이전의 대통령직 수행 횟수는 산정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으로 집권 연장의 길을 터놨다. 푸틴이 83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는 이에 근거한 것이다.

외형상 민주주의일 뿐 실질은 권위주의적 독재인 푸틴 체제가 가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무자비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그의 독재 스타일이고, 또 하나는 러시아 국민들의 혼란에 대한 공포와 옛 소련이 누린 영화에 대한 갈망이다. 푸틴은 장기 집권 개헌안이 헌법재판소까지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파트, 자동차 등을 경품으로 내걸고 국민투표를 실시할 정도로 치밀하다. 정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 얼마 전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를 끝으로 정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무장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서 투명 투표함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선 107%의 득표율이 나온 투표소도 있다. 푸틴 재선 후 철권 통치가 강화될 것이라고 하나, 장래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위험한 권력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