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의 기원은 100여년 전 베이징에서 팔던 고급 요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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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풍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
화교 3세가 쓴 한국식 중국요리 역사
'서민 음식' 짜장면은
베이징 고급 국수 요리였다
화교 3세가 쓴 한국식 중국요리 역사
'서민 음식' 짜장면은
베이징 고급 국수 요리였다
한국 사람들이 하루에 먹는 짜장면은 약 600만 그릇. 면의 길이를 다 합하면 지구 한바퀴 반을 돌 수 있다. 짜장면에 짬뽕, 울면, 탕수육 등 한식보다 더 한식 같은 '한국식 중화요리'는 어떻게 한국에 터를 잡게 됐을까.
재한화교 3세대가 쓴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은 짜장면과 짬뽕을 비롯한 한국 중화요리의 역사적 기원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파헤친다.
짜장면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들이 먹던 값싼 음식에서 출발했다거나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으나, 저자는 이에 반박하고 나선다. 대신 중국 베이징의 한 다관(茶館)에서 짜장면이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중국 문인 루쉰의 소설, 극작가 라오서의 연극, 북한의 고고학자 도유호의 기록 등을 근거로 1912년 전후 베이징의 다관에서 팔던 고급 국수 요리로부터 짜장면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베이징에서 시작된 짜장면은 어떻게 한국으로 들어왔을까. 그 시작은 인천이다. 개항기 인천엔 게살 통조림, 토마토 케첩, 과일 통조림, 죽순 통조림 등 각종 가공식품과 일본인 및 서양인이 즐겨 먹던 양파와 피망, 양배추, 당근 등 주요 중화요리 식재료가 들어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고급 중화요리점이 번성했다. 다만 당시엔 짜장면보단 '다루몐', 그러니까 지금의 울면이 더 인기가 많았다.
그밖에 이 책은 짬뽕과 더불어 탕수육, 양장피, 라조기, 유산슬, 부추잡채 등 지금도 대중적인 중화요리의 유래를 살펴본다. 중국식 닭튀김인 '짜바께'부터 용호투, 짜춘권, 해삼쥬스 등 고급 중화요리점과 화교의 잔치 음식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중화요리의 탄생과 소멸을 쫓다보면 어느새 허기가 진다.
저자는 중화요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화교의 삶도 음식의 역사와 엮어 설명한다. 개화기 국내로 중국 식자재를 들여온 화상(華商)과 낯선 땅에서 중국 식자재를 심고 키워낸 화농(華農) 등이 정착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들의 중심에는 음식, 그중에서도 중화요리가 늘 함께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재한화교 3세대가 쓴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은 짜장면과 짬뽕을 비롯한 한국 중화요리의 역사적 기원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파헤친다.
짜장면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들이 먹던 값싼 음식에서 출발했다거나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으나, 저자는 이에 반박하고 나선다. 대신 중국 베이징의 한 다관(茶館)에서 짜장면이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중국 문인 루쉰의 소설, 극작가 라오서의 연극, 북한의 고고학자 도유호의 기록 등을 근거로 1912년 전후 베이징의 다관에서 팔던 고급 국수 요리로부터 짜장면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베이징에서 시작된 짜장면은 어떻게 한국으로 들어왔을까. 그 시작은 인천이다. 개항기 인천엔 게살 통조림, 토마토 케첩, 과일 통조림, 죽순 통조림 등 각종 가공식품과 일본인 및 서양인이 즐겨 먹던 양파와 피망, 양배추, 당근 등 주요 중화요리 식재료가 들어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고급 중화요리점이 번성했다. 다만 당시엔 짜장면보단 '다루몐', 그러니까 지금의 울면이 더 인기가 많았다.
그밖에 이 책은 짬뽕과 더불어 탕수육, 양장피, 라조기, 유산슬, 부추잡채 등 지금도 대중적인 중화요리의 유래를 살펴본다. 중국식 닭튀김인 '짜바께'부터 용호투, 짜춘권, 해삼쥬스 등 고급 중화요리점과 화교의 잔치 음식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중화요리의 탄생과 소멸을 쫓다보면 어느새 허기가 진다.
저자는 중화요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화교의 삶도 음식의 역사와 엮어 설명한다. 개화기 국내로 중국 식자재를 들여온 화상(華商)과 낯선 땅에서 중국 식자재를 심고 키워낸 화농(華農) 등이 정착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들의 중심에는 음식, 그중에서도 중화요리가 늘 함께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