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여관 지하층 쿰쿰한 전시실엔 어처구니없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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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윤희의 작가들의 별난 아틀리에
설치미술가 김희라의 아틀리에, ‘동양장여관’
설치미술가 김희라의 아틀리에, ‘동양장여관’
작가 김희라는 대전의 대흥동 구시가지의 여관 ‘동양장’의 주인이다. 이게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었는데, 여관문을 열고 들어가 일층의 작업실에 당도한 그는 의외로 여관과 관련된 많은 전화를 받았다. 방 있냐는 전화를 받으면 “방 없어요”라고 말하고, 여관을 팔라는 전화가 오면 “안 팔아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곳에는 장기투숙객들, 주로 기초수급을 받는 이들이 거주하며 입성이 허름한 사람들이 가끔 김희라에게 숙박비를 지불한다. 좀 이상하지만 상당히 안정된 운영이 아닐 수 없다.
1층의 카운터에는 안내인 대신 짐이 쌓여 있으며 여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1층 계단 뒤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그뿐인가. 그의 작업실에는 바닥의 뚜껑을 열면 지하로 뚫린 계단이 나오는데, 그 계단을 내려가면 전시공간이 있다. 지극히 건조하게 사실을 적시한 명칭인 ‘동양장 B1’은 노출콘크리트도 아니고 지하 보일러실 그대로 시멘트 마감을 드러낸 크고 작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쩐지 쿰쿰하고 연탄 냄새도 배어있는 것 같은 이 공간은 야심차게 조성되어 화려하게 오픈했다기보다는, 어쩌다보니 보일러실이 별 용도 없이 방치된 것을 깨닫고 노느니 염불한다고 전시공간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건물 전면의 공간을 조금 터 유리를 덧달고 나니 윈도우 갤러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김희라의 스타일이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매력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동양장 여관 입구 지나 일층을 쓰고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진분홍색으로 칠해진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작업실의 모든 부분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 중 가장황당했던 것은 작업실의 화장실에 가다가 발견한 휴지걸이였다. 화장실 옆 벽에 설치해놓은 휴지걸이에, 그 누구나 알만한 푸른색 꽃무늬가 잔잔하게 새겨진 휴지가 걸려있기에,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나 하고 죽 잡아당겨 떼려고 했는데 그것은 휴지가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놓은 가짜 휴지였던 것이다. 화장실용 휴지걸이에 푸른 꽃무늬를 수놓고 휴지를 뜯어낼 수 있도록 칸을 표시하는 부분도 정교하게 바느질이 되어, 화장실 가는 길에 휴지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은 속을 법한 가짜 휴지를 만들어 놓았다.
김희라의 가짜 휴지걸이는 그곳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죽 뽑았던 가짜 휴지를 다시 돌돌 말면서 감히 작품에 손을 대서 문제가 생길까 하는 우려는 되지 않았다. 김희라는 일부러 그 장소에 가짜 휴지를 걸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약간의 시차을 두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다시 한 번 그 가짜 휴지에 속았다. 손을 대는 순간 아차 두 번이나 속다니 좀 분하기도 했지만, 한 번 더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일상 기물의 형태나 재질을 바꾸어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김희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어이없는 것은 검정 비닐봉지를 만든 것이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 한 장 쭉 뜯어서 콩나물이나 부추를 담아주는 그 검정 비닐봉지를 그는 쭈글쭈글하고 얇은 천으로 만들었다. 플라스틱 쓰레기통 안쪽에 입혀진 검정 비닐봉지, 아니 검정 비닐봉지를 모방해 천으로 만든 이 작품을 보면 정말 감쪽같이 또 속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니, 도대체 왜?”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검정 비닐봉지는 세상에서 가장 싼 물건이 아닌가? 요즘 환경정책 때문에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는 몇십원의 봉투값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물건을 사면 거저 따라오는 무가치한 물건에 가깝지 않은가? 구겨진 검정 비닐봉투의 재질을 꼭 닮은 그 천은 오히려 가격이 좀 있는 수입산이라고 하니 어느 구석에서 어이를 찾을 수 있으랴. 그의 작업실에 몇 번이나 들렀을까.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상의하러, 인근을 지나가다가, 어쩌다 하루 종일을 내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오가면서 ‘동양장여관’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마흔 넘어 만난 동갑내기 작가의 작업실이 보면 볼수록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대전 프랑스문화원에서 개인전 오프닝 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눈앞에 있는 ‘동양장여관’을 발견했다고 한다. 팔순이 넘은 여관 주인에게 혹시 여관 팔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가 괜한 ‘업자’ 취급을 당하기도 했던 김희라는, 그 다음에도 오며가며 지나칠 때마다 주인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건넸다. 여관 운영으로 자식 넷을 멀쩡히 성장시킨 그곳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원 주인은 몇 년 후 김희라 작가를 콕 찍어 “너에게 팔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길로 작가는 (자신이 구입할 자금은 없었으므로 동생과 제부를 설득하여) 여관을 인수하게 되었다.
작가의 삶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달라졌다. 현재의 시점에서 ‘동양장여관’은 서로 흩어진 개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묘하게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다. 위층에 거주하는 이들과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있어서 안심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무슨 대화 중에 그는 “윗층 사시는 분들이 분리수거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 줄 알아요?”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굳어져 있는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매의 눈으로 동양장 주변을 둘러보고, 어제 없었던 일이 일어나면 재깍 여관 주인 김희라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그들이다. 그 오묘한 연대에는 십년 이상의 시간이 녹아 있다.
갤러리와 작업실과 여관은 카테고리가 다르다. 그 중 둘만 있어도 머리가 복잡해질 것 같다. 심오한 공간인 척 위선으로 무장한 ‘갤러리’와는 다른 얼굴을 가진 ‘동양장 B1’, 향긋한 차와 고상한 음악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유형의 작업실과는 전혀 다른 그의 (정신없는) 작업실, 그리고 이런 주인장의 행보를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위층 사람들, 이 팽팽한 관계에서 앞으로 더 재미있는 무엇이 나올지 늘 기대가 된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김희라 작가의 선택들이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삶과 예술에 영향을 갖지만, 나아가 생각보다 많은 주변 사람들의 삶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쿰쿰하고 연탄 냄새도 배어있는 것 같은 이 공간은 야심차게 조성되어 화려하게 오픈했다기보다는, 어쩌다보니 보일러실이 별 용도 없이 방치된 것을 깨닫고 노느니 염불한다고 전시공간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건물 전면의 공간을 조금 터 유리를 덧달고 나니 윈도우 갤러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김희라의 스타일이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매력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동양장 여관 입구 지나 일층을 쓰고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진분홍색으로 칠해진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작업실의 모든 부분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 중 가장황당했던 것은 작업실의 화장실에 가다가 발견한 휴지걸이였다. 화장실 옆 벽에 설치해놓은 휴지걸이에, 그 누구나 알만한 푸른색 꽃무늬가 잔잔하게 새겨진 휴지가 걸려있기에,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나 하고 죽 잡아당겨 떼려고 했는데 그것은 휴지가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놓은 가짜 휴지였던 것이다. 화장실용 휴지걸이에 푸른 꽃무늬를 수놓고 휴지를 뜯어낼 수 있도록 칸을 표시하는 부분도 정교하게 바느질이 되어, 화장실 가는 길에 휴지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은 속을 법한 가짜 휴지를 만들어 놓았다.
김희라의 가짜 휴지걸이는 그곳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죽 뽑았던 가짜 휴지를 다시 돌돌 말면서 감히 작품에 손을 대서 문제가 생길까 하는 우려는 되지 않았다. 김희라는 일부러 그 장소에 가짜 휴지를 걸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약간의 시차을 두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다시 한 번 그 가짜 휴지에 속았다. 손을 대는 순간 아차 두 번이나 속다니 좀 분하기도 했지만, 한 번 더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일상 기물의 형태나 재질을 바꾸어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김희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어이없는 것은 검정 비닐봉지를 만든 것이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 한 장 쭉 뜯어서 콩나물이나 부추를 담아주는 그 검정 비닐봉지를 그는 쭈글쭈글하고 얇은 천으로 만들었다. 플라스틱 쓰레기통 안쪽에 입혀진 검정 비닐봉지, 아니 검정 비닐봉지를 모방해 천으로 만든 이 작품을 보면 정말 감쪽같이 또 속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니, 도대체 왜?”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검정 비닐봉지는 세상에서 가장 싼 물건이 아닌가? 요즘 환경정책 때문에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는 몇십원의 봉투값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물건을 사면 거저 따라오는 무가치한 물건에 가깝지 않은가? 구겨진 검정 비닐봉투의 재질을 꼭 닮은 그 천은 오히려 가격이 좀 있는 수입산이라고 하니 어느 구석에서 어이를 찾을 수 있으랴. 그의 작업실에 몇 번이나 들렀을까.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상의하러, 인근을 지나가다가, 어쩌다 하루 종일을 내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오가면서 ‘동양장여관’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마흔 넘어 만난 동갑내기 작가의 작업실이 보면 볼수록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대전 프랑스문화원에서 개인전 오프닝 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눈앞에 있는 ‘동양장여관’을 발견했다고 한다. 팔순이 넘은 여관 주인에게 혹시 여관 팔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가 괜한 ‘업자’ 취급을 당하기도 했던 김희라는, 그 다음에도 오며가며 지나칠 때마다 주인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건넸다. 여관 운영으로 자식 넷을 멀쩡히 성장시킨 그곳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원 주인은 몇 년 후 김희라 작가를 콕 찍어 “너에게 팔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길로 작가는 (자신이 구입할 자금은 없었으므로 동생과 제부를 설득하여) 여관을 인수하게 되었다.
작가의 삶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달라졌다. 현재의 시점에서 ‘동양장여관’은 서로 흩어진 개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묘하게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다. 위층에 거주하는 이들과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있어서 안심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무슨 대화 중에 그는 “윗층 사시는 분들이 분리수거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 줄 알아요?”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굳어져 있는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매의 눈으로 동양장 주변을 둘러보고, 어제 없었던 일이 일어나면 재깍 여관 주인 김희라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그들이다. 그 오묘한 연대에는 십년 이상의 시간이 녹아 있다.
갤러리와 작업실과 여관은 카테고리가 다르다. 그 중 둘만 있어도 머리가 복잡해질 것 같다. 심오한 공간인 척 위선으로 무장한 ‘갤러리’와는 다른 얼굴을 가진 ‘동양장 B1’, 향긋한 차와 고상한 음악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유형의 작업실과는 전혀 다른 그의 (정신없는) 작업실, 그리고 이런 주인장의 행보를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위층 사람들, 이 팽팽한 관계에서 앞으로 더 재미있는 무엇이 나올지 늘 기대가 된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김희라 작가의 선택들이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삶과 예술에 영향을 갖지만, 나아가 생각보다 많은 주변 사람들의 삶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